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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수 염 고 래/공 부

세계 자체를 사유하기

by 두치고 2013. 12. 11.
◎ 세계의 존재
철학 담론에서는 ‘세계’의 그 무엇을 문제 삼는 것에 선행해 ‘세계’ 그 자체에 대해 사유한다. 
가장 근원적인 물음: “어째서 무가 아니고 존재인가?”, “세계는 왜 존재할까?” 
세상에는 여러 사건이 있지만 이 세계에서 가장 큰 사건은, 바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음에도 존재한다는 것. 이 점에서 세계의 존재는 우발적(contingent)이다. (↔필연적)
이때 우발적이라 함은 과학적 메카니즘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하는 우연과는 다르다.
우주의 존재, 생명의 탄생 등 모든 것은 과학적으로는 설명될지 모르나 보다 근원적인 형이상학적 물음으로는 설명되지 못한다. 인간은 이 검증되지 못하는 형이상학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한다. 

◎ 세계의 개념
세계라는 말은 궁극적인 ‘전체’를 뜻하기도 하고 ‘어떤 영역’을 뜻하기도 한다. ‘어떤 영역’을 뜻할 때에도 그 안에는 ‘전체’의 뉘앙스가 들어있다. 이 때 대부분 인간중심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 (→ “‘세계’라는 말은 생물학적 ‘種’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세계(世界)는 세대(世)와 영역(界)의 합성어이다. 즉 공간적 개념과 시간적 개념을 함축한 것으로서, 일정한 세대, 일정한 영역을 뜻한다. 이 때 영역의 크기는 상대적이다.

세계(世界): 자연세계까지 모두 포괄하는 전체
세상(世上): 인간사(人間事)에 한정되는 전체 (흔히 ‘세계사’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세상사’라 할 수 있다) 

세계는 전체이지만 전체가 꼭 세계는 아니다. 나무판을 자르면 부분들로 나뉜다. 이때 나무판은 전체지만, 세계는 아니다. ‘세계’라는 개념이 성립하려면 多와 運動이 전제되어야 한다. 미생물들이 그저 아무 관계없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세계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나무판 안에 무수한 미생물들이 살고 있고, 서로 관계 맺고 운동하면서 그 안에서 살고 있다면 나무판은 세계이다. 즉, 미생물들의 多와 그들의 관계, 운동이 존재할 때 나무판은 그 자체 하나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세계는 그 안에서 무수한 존재들이 서로 관련 맺고 살아가는 환경(milieu), 틀(matrix)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가 환경, 틀인 이상 일정 정도의 통일성이 전제된다. 스포츠의 세계라는 세계는 스포츠라 불리는 모든 것들에게 공통된 환경을 형성한다. 그런 통일성이 깨질 때 세계가 갈라지면서 야구의 세계와 축구의 세계 등 여러 세계가 분리된다. 세계라 불리는 그 어떤 것도 일정한 통일성을 전제한다. 
 
  


이 세계의 존재는 우발적이다.

우발적이라고 함은 necessary반드시그래야할 이유가 있는 것 즉 필연의 반대이다. 이 세계의 존재에는 필연적 이유가 없다.필연적으로 내가여자로 태어나야하는 이유? 생물학적으로필연이지만 현상학적르로는 내가 꼭 여자일 이유가 있는가? 우연은 과학적 메카니즘에서의 빗나감이다. 우연은 우발과는 다르다. 더 근본적으로. 철학적으로는 우리의 삶은 우발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우발적인 것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미를 찾아간다. 그것이 형이상학이다. 그 형이상학중 가장 단순한 예는, 신이 우리를 창조했다. 형이상학은 검증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형이상학적으로 탐구.

세계라고 하는 말은 그 말이 포괄하는 의미가 상대적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역을 뜻하는 세계는 전체의 의미를 담고 있음. /세계라는 말은 생물학적 의미를 뗄 수 없다고 이야기 함. 즉 자기중심적 세계. /세계라고 하는 말의 층차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세계는 여러가지 것들을 포괄하는 전체.

-세계와 세상은 다르다. 세상은 인간사에 한정되는 전체임. 세계사는 세상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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