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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별 여행자

by 두치고 2010. 10. 8.
문명 세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시간을 잃어버린다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 투아레그인들은 다르다. 우리에게 있어 시간은 잃거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살아가는'것이다.
 
문명 국가들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매우 멀다. 
 
사막은 광대하다. 그러나 아무도 일정 범위의 땅을 가지고 나의 것이라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지는 공기와 마찬가지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다.
 
우리는 단순함과 가벼움을 선호한다. 행복 역시 단순함과 가벼움 안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저승길을 가면서 집을 이고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우리가 살아온 시간만이 그 길을 동행한다.
 
삶의 모든 순간순간은 모두 긍정적인 경험이다.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다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 눈을 아름답게 씻어 둘 필요가 있다. 두눈을 크게 뜨고 영혼이 빛나게 하라. 영혼은 그러한 아름다움과 맞닿는 순간 벌써 위대해지고 있다.
 
생명은 자연에 속한 것이기에 저마다의 눈길은 생명력을 갖는다. 
 
유럽 대도시 사람들의 눈은 현란한 광고 네온사인에 끊임없이 자극을 받는다.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 온갖 색채와 빛에 넋을 잃었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벽들을 기어올라 간판들을 없애고, 소음을 지우고, 풍경을 정화시키고 싶었다. 건물의 돌들이 제 영혼을 찾을 수 있도록.
프랑스인 친구들이 문의 아름다움이며, 길 가는 여인의 슬픔, 아이의 눈물, 사람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분위기, 마지막인 것 처럼 나누는 입맞춤을 이제는 보지 못하듯 그 빛도, 그 색깔도 더이상 보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놀랐다. 자신들만의 세계에 몰두한 그들은 그들을 둘러싼 세상에는 감탄하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 어떤일을 겪에 되더라도 늘 주의를 늦추지 말고 냉정함을 간직해라. 그러면 모든게 잘될 거다."
그날 이후로 내 눈은 한 번도 잠든 적이 없다. 정신이 깨어 있는 나는 그 무엇도 놓치지 않는다.
 
 
여행은 자기 자신에게로 떠나는 것이며, 또한 그 여행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행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삶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 순간에는 소유해야 할 것도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투아레그족 사람들이 삶을 통해 궁극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이다. 이는 곧 진정한 자아와 만나고, 자기 안에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자기 안에 평화를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 또한 우리가 배워야할 중요한 사항이다.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려면 먼저 자기 자신과 평화로워져야 한다.
 
"최고의 앎은 인간에게서 인간에게로 전해지는 것이다."
보다 많은 곳을 여행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배우는 것, 이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기도란 영혼의 숨결이요, 마음과 몸의 균형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신이 없다면, 정신은 더 이상 비상하지 못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며, 그 어떤 감각도 정신을 이끌어 주지 못한다고.
 
왜 사람들이 자신들 영혼 속에서 그토록 외로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정신성을 잃은 모든 나라들이 그들의 뜻과는 달리 믿음의 경계에 내몰려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말해 주고 싶었다. 예쁜 것은 잡지 속의 너무 슬프도록 완벽한 그 여자가 아니라, 통통한 몸매에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흐트러지도 실수를 저지르는 너라고. 특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잡지나 텔레비전에 나온 모습이 이상형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상이라는 개념이 그렇게나 힘을, 아름다움을 정신적인 맹세를 잃을 수 있는 것일까?
물질주의는 인간을 고귀한 영혼을 지닌 존재가 아닌 육체를 가진 하나의 물질로 취급한다. 각자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영혼의 가치를 잊고 많은 사람들이 인기 있는 배우나 스타를 닮길 원한다. 여성의 육체는 상업화되었고,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사업을 위한 수단과 육체적 욕망을 해소하는 관계로 변형되어 그 본래의 가치를 잃었다.
가슴이 뒤따르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리고 모든 존재들이 고귀한 혼을 지닌 스승들이며 마음과 마음이 만났을 때 진정한 삶이 열린다
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이러한 이상 현상도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문명 국가들에서는 자기 존재의 유일함이 지니는 가치 안에서 비상하는 열망이 아니라, 자기가 소유하지 못한 것을 '이상'이라 부른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세상을 얼마나 재미없는 곳이 되겠는가.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갖가지 언어들은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타인을 판단하거나 설득하려 해서는 안 된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타인의 생각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화를 할 때 버려야 할 점은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만심이다. 마음을 열고 타인의 말에 귀기울인다면, 서로의 다른점을 다양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너대로의 모습으로 살아라."
그것은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만드는 단 한 가지 방법이다.
 
 
"여행이란 많은 타인들을 통과하면서 자신에게서 자신으로 떠나는 거야."
 
 
나는 오랫동안 궁금했다. 어떻게 사람들이 예기치 않은 일에 아무런 여지도 남겨 두지 않고 일을 미리 빈틈없이 짜려고들 하는지. 삶을 앞서 계획하면서, 어떻게 삶을 창조하려 하는 것일까? 나는 내 수첩 속에 우연을 위한 빈자리를 남겨 둔다. 예기치 않은 것을 위해 숨 쉴자리를. 우리가 눈을 떳을 때 우리를 도울 줄 아는 삶의 무한한 다양성에 나 자신을 내맡기고 싶다.
 
 
사람들은 언제나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두리번거리지만 돈은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타인, 그리고 대지와 어우러져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는 데는 음악, 노래, 장작불, 춤, 별 이런 요소들이 필요한 게 아닐까?
 
나는 특히 꿈이 없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결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마음의 눈으로 볼줄 모른다면 이 세상은 충분치 않다.
 
 
그렇게 해서 나는 배웠다. 사람은 자신의 힘을 유일한 버팀목으로 삼아 언제나 홀로 살아간다는 것을. 존재의 무궁무진함을 깨닫게 된다.
 
 
어디로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다면, 자신이 어디서 왔는가를 기억해 내야 한다. 자신이 온 곳이 어디인가를 잊지 않는다면 길을 잃을 까닭이 없다.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서의 끈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하다. 
스스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어떤 고통과 시련을 겪든 간에, 우리는 의연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고통과 대등하게 맞서야 한다. 
타락에 몸을 굽힌 사람들을 보면, 고개를 들어 앞을 똑바로 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주위를 둘러보라고. 모든 것이 거기 있다고.
 
 
변치 않는 가장 크나큰 부는 자기 자신이 되기를 간절히 갈망하는 것임을. 
먼저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의 고유성을 잃지 말고 자기 안에서 발전과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이 완벽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인 친구들은 매일 마주치는 이웃이나 동료, 상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종종 털어 놓는다.
왜 당신들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말하고자 하지 않는가? 깊은 의미가 없는 그 모든 말이 무슨 소용일까?
진정한 의미의 대화는 가슴과 가슴이 닿아야 한다.
 
 
"서두르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관조할 시간도 없이 소멸을 향해 내달리기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내심은 시간과 짝이 되어 여유 있는 행동을 하게 해 줌으로써 자신에게 충실하도록 도와준다.
 
 
시간은 돈이 아니라 삶이다.
현대인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내의 끝에는 하늘이 있다"
 
사막은 무, 침묵, 영혼의 깊이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스승이다. 사막에서라면 사람들은 누구든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환경오염은 자연을 소유물로 보는 시각과 소비문화가 부추긴 낭비벽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대지는, 꽃과 나무와 동물은 우리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인간은 어미의 젖을 빠는 새끼 양들과 같다. 
 
 
우리 고장에서는 나이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그게 무슨 소용일까? 단 한가지 중요한 것이라면, 삶에서 우리가 성장하는 일이다. 익은 열매는 나이가 없다. 다양한 과정을 경험했을 뿐. 숫자 속에 나를 가두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인샬라' (신이 허락한다면 내일 또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은 존재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알고 있으며,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알고 있다.
 
 
빛 업이 사물들이 존재감을 갖는 시각. 사람들이 사물을 느끼고 간파하는 시각. 사막에서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둠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밤을 볼 줄 안다. 밤은 빛의 한 면일 뿐이다.
 
 
유목민인 나는 자유인으로 남고 싶다. 나는 바람이 나를 데려가는 곳으로 어디든 갈 수 있다. 고여 있는 삶일수록 더 많은 의존성을 만들어 낸다. 마치 사람들이 이미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어떤 삶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것 처럼. 전화, 텔레비전, 컴퓨터, 담배, 술, 애완견.., 익숙한 삶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결코 자기 자신에게서 멀리 떠나지 않는 그만큼의 이유들.
필요한 듯 보이는 욕구도 필수불가결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인가?
 
 
소중한 일에 전심 전력을 다 쏟는 법

 
 
내 이웃이 종종 말하기를, 월급으로 집세 내고 먹을거리 사고 나면 남는게 없단다. 그래서 인생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라고 믿는 탓이다.
일하고, 먹고, 자는 것. 돈 벌고. 장보고. 집세 내는 것.
그래봤자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오로지 먹고 머물기 위해서만 평생토록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인생을 놓치는 것이다.
물질적이고 일상적인 잡다한 사건들에 소진되어 버리는 삶에서 벗어날 새로운 목표를 찾아야 한다.
 
 
인간이 갖게 되는 욕망들 중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불필요한 것들이다. 그 불필요한 욕망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할 때 생겨난다. 내면의 만족과 균형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자연히 외부 세계로 눈을 돌린다. 그때 소유의 욕구가 생긴다. 내적 불만족은 자신과 외부 세계 사이의 불균형을 낳고, 그 안에서 두려움과 번민이 생겨난다.
절망적인 생각들과 상실의 감정들이 영혼을 사로 잡는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잊고 감정과 욕망에 치우쳐 사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늘 다른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망과 상실감을 채워 줄 것들은 결코 외부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이를 바깥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에 각종 중독증에 시달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그리고 최고의 가치를 두고 소유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원래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아끼는 사랑의 마음이다. 그리고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의 조화와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또 내게 주어진 의무들 안에서, 다만 나는 세상을 위해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일이 무엇인가를 기억하며 매일을 살겠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믿음 없이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서둘러 노를 젓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만나야 할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
 
 
도시 생활의 유일한 탈출구는 끊임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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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 전 부터 사막을 보길 원했다.  끝없이 펼쳐진 광대함 속의 나를 그리며 
어린왕자가 사라진 사막의 한 풍경을 
언제부턴가 가슴속으로 쫒아가고있었다
moussa ag assarid의 글에 가슴 속 깊이 공감한다
   또 그의 글로 인해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용감하게 말할 수 없는 사실이 슬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