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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분 에 물 주 기

젊은 시인에게 쓰는 편지-릴케

by 두치고 2010. 12. 10.
1903년 2월 17일
 
제발 그런 일은 이제 그만두도록 하십시오. 당신은 자기의 밖을 내다보고 계십니다.  누구도 충고를 해주거나 당신을 도와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사람은 아무도 없읍니다.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읍니다. 
자기 자신 속으로 침잠(沈潛)하십시오.
그 욕구가 당신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뿌리를 뻗어 나오고 있는지를 알아 보시고, 만일 쓰는 일을 그만둘 경우에는 차라리 죽기라도 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나는 쓰지 않으면 안 될까?
그리고는 마음 밑바닥에서 흘러 나오는 대답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생애를 이 필연성에 의해서 세우십시오.
당신의 생활은 비록 아무렇게나 다루어지거나 쓸데없는 순간이라도 그 충동에 대한 증거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자연에 근접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게 될 것을 모방하지 말고 말로 표현하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훌륭한 시인이 못되어 그 일상의 풍요로움을 불러낼 수 없음을 자책하십시오.
 
자기 자신으로 파고들어서 당신의 생명이 근원한 그 깊이를 음미하도록 하라는 겁니다.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외부로부터의 보상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말고 그 무겁고 힘든 짐을 지고 가십시오.
창조자는 그 자신이 하나의 세계이어야만 하며, 자신 속에서나 그 자신과 어울려 하나가 될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을 찾아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조용하고 진지하게 당신의 발전을 통해서 성장해가도록 하시라는 것입니다. 가장 은밀한 시간에 당신 내심의 느낌을 통해서만이 해답을 내릴 수 있는 의문에 대해서, 밖을 향하거나 외부로부터 그 해답을 구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만큼 당신의 발전을 가로막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1903년 4월 5일
아이러니에 정신을 잃지 않도록 하십시오.

사물의 밑바닥을 추구하도록 하십시오. 아이러니가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자문해 보십시오. 위대함을 지니지 않은 고독이란 대체 무엇인가.

비록 부질없고 싸구려연대감이지만 고독을 그것과 바꾸고 싶은 때도 있고, 형편없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겉치레만으로라도 그들과 조금이나마 고독을 나누고 싶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런 시간들이 바로 고독이 자라나는 때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착각하지 마십시오. 고독, 크고도 내적인 그 고독 뿐입니다. 자기 자신속으로 몰입하여 아무와도 만나지 않는것 ㅡ 그런 것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의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야말로 당신이 혼신의 사랑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어른들이란 아무것도 아니며 그들의 권위는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1904년 5월 14일

 
우리들이 아는 것은 적지만 우리들이 어려운 쪽에 의지해야 된다는 사실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고독하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고독이란 어렵기 때문이죠. 그게 어렵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그걸 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수련기는 언제나 지루하고 폐쇄된 기간이므로 사랑은 오랜 세월을 두고 인생의 내부까지 깊이 파고드는 고독이며,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는 사랑이란 승화되고 심화된 독거입니다.

사랑은 개인이 자기 내부에서 그 무엇이 되고 세계가 되며, 자기 자체로서 타인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될 숭고한 계기임과 동시에 자기에 대한 크나큰 요구이고 자기를 뽑아 내어 보다 넓은 곳으로 불러내는 그 무엇입니다.

 
자기 자신을 잃게 되는 사랑-첨을성이 없는 젊은의 본질
 
 
 
 
1904년 8월 12일
 
더욱 큰소리를 내도록 여러 사람과 나누어 가지려는 슬픔만이 위험스럽고 나쁠 뿐입니다. 
슬픔이란 무언가 새로운 것, 알려지지 않은 것이 들어오는 순간
그 순간 우리들의 감정은 깜짝 놀라 멍하니 입을 다물며, 우리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은 뒤로 물러서고 거기에 고요가 생겨나며,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것이 그 가운데서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온갖 슬픔은 긴장의 순간인데, 우리들은 그것으로 오히려 마비로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우리들은 낯선 감정의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고 우리 집에 들어선 낯선 손님과 단둘이서만 있게 되기 때문이며, 순간적으로 모든 친근한 것들과 낯익은 것들을 빼앗기기 떄문이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과도기에 우리들이 서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슬플 때는 고독하고 조심스러이 행동한다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미래가
훨씬 더 가까이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느끼는 자로서 조용하고 참을성이 있을수록
새로운 것은 보다 깊숙이 곧바른 길을 찾아 우리 내부로 들어오며, 우리들을 그것을 훨씬 쉽게 얻을 수 있고 그것을 우리들에게 더욱 가까운 운명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당신은 불안이나 우수나 슬픔 따위를 당신으로부터 추방하려고 하십니까? 그런 상태가 당신에게 오히려 어떤 일을 해줄는지도 알지 못하시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런 것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로 왜 그리 괴로워하십니까? 당신은 과도기에 처해 있으며 스스로 변화되기를 무엇보다도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벌어지는 일로부터 지나치게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일어나도록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현재 당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에 관여되어 있는 당신의 과거를 질책의 눈으로 보기가 쉽습니다.

 
 
 
 
1904년 11월 4일
 
언제나 제가 바라는 바는, 당신이 내부에서 충분히 인내력을 발견하여 참으며 단순성을 갖고 믿어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점이나 타인들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당신의 고독에 대해서 더 많은 신뢰감
을 지니도록 하십시오
. 그 외에는 삶이 제 길을 가도록 그냥 맡겨 두십시오. 제말을 믿으십시오. 삶은 어떤 경우에서든 올바른 것입니다.
 
당신을 송두리째 포용하고 지양시켜 주는 감정은 모두가 순수하나, 당신의 존재의 일면만을 부여잡고 당신을 일그러뜨리는 감정이라면 불순합니다.
 
 
 
 
1904년 11월 20일
 
당신의 삶을 신뢰할 수 있는 능력
어려운 쪽에 대한 믿음
우리들은 언제나 어려운 쪽에 의지 해야 한다.
우리들은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그 삶이 우리 것이 되고 우리의 짐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1910년 <말테의 수기>가 나왔다. 이 작품은 너무나 위대한 내적 고백
 
일에 모든 정력을 바치는 위대한 예술가
릴케는 사물에 대한 겸허하고 끈기 있는 헌신을 통해서 그 사물의 영혼을 파악하려고 애쓰게 된다. 시 <표범>
 
시어의 압축을 통해 표현 영역을 넓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귀로 들을 수 없는 것 까지 표현할 수가 있었
사랑, 죽음
죽음이란 것이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서 익어 그 열매의 핵이 될 때, 시인은 죽음을 가장 잘 파악할 수가 있다고 여겼
 
 
이 무수한 편지들 사이에서 나는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다..
 
릴케의 위대한 정신에? 나와 이 책이 만나게된 인연에? 그것도 아니면 이 편지들을 읽는 즐거움에?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인간이고 이 삶을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오래된 종이 위에 타박타박 박혀있는 문자들이 날 깊숙히 치유해 준다. 그것이 그가 충실한 유일한 벗이고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인 것이다. 나의 결핍된 영혼을 
자상하게 감싸주고 불러와 주는 릴케의 목소리와 첫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날들이었다. 그와 함께 공감하고, 그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고,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중심을 잡게 된다. 
특히 로댕에 대한 그의 글은 
읽어보아야 한다. 정말,,,
이 책은 이렇게 메모해  둘 것 이아니라 곁에 두고 자주, 오랜 시간을 들여 음미해야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