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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이 되기 위하여' -Krishnamurti

by 두치고 2011.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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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추구하는 것은 행복인가, 아니면 그로 인하여 행복을 유도할 어떤 종류의 만족을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들 대부분은 만족을 추구하는 듯 싶다.
자신을 알지도 못하고, 자신의 사고방식가 왜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자신의 배경을 이루는 조건을 알지 못하고, 예술과
종교 그리고 나라와 이웃과 자기 자신에 관해서 왜 어떤 신념을 가지게 되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너는 어떻게 무엇에 관해서 참된
사고를 할 수가 있겠는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고 하기 전에 우리들은 우리 자신부터 알아보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관계라는 행동을 통해 자신을 검토해야 한다.
우리들이 너무나 참을성이 없다는 것이 어려운 점이어서, 우리들은 계속해서 나아가기를 원하고, 끝에 다다르기를 원하고, 따라서 우
리 자신에게 검토하고 관찰할 기회를 줄 시간도 없고 계기도 없어 지게 된다.
여러가지 다른일에 너무나 얽매여서 우리들은 자아에 대한 명상과, 관찰과 연구를 위한 시간이 거의 없어 진다.
자아에 대한 지식은 끝없는 강이다.
억지로 행하는 자아 수련이 아닌, 자아에 대한 지식을 통해 마음이 고요해질 때만, 그 침묵속에서 현실은 존재하게 된다.
끊임없는 내면의 혁명이 없이는 희망도 없다. 그 까닭은 내적인 혁명이 없다면 외적인 행동은 반복과 습성이 되기 때문이다.
내면의 존재가 외부로, 세계로 투영되었고, 한 사람의 인간성과, 그 사람이 생각하는 바와, 느끼는 바와, 일상생활에서 하는 행동이
외부로 투영되고, 그것이 세계를 형성한다.
 
긍정적인 결론으로서가 아니라, 부정적으로 연구하고, 검토해야만 한다.
자신을 변모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앎이 필수적이고,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지 못하면 올바를 사상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지 못하고
, 자신을 알지 못하면 변혁도 이루어지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알아야 한다.
신념과 이상이랑 빛깔만 제공할 뿐이요 참된 파악을 왜곡시키기 때문에 모든 신념으로부터, 모든 이상화로부터 이성이 자유가 되고 민
감해야만 한다.
 
 
나는 언제생각하는가?
진리란 순간순간에 직접 경험해야 하는 무엇이다.
노력은 실재하는 바로부터의 이탈이다.
자신이 속이 텅 비고 내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을 인식
내적인 결함, 즉 공허한 실존을 이해하게 되면 사람이 그 부족함과 더불어 살고 그 결점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면 창조의 현실, 오직
그것만이 행복을가져다 주는 창조적 지성이 찾아온다.
행동하는 상태의 너 자신을 외부에서만 관찰하지를 말고 네 생각과 감정의 움직임도 살펴보라, 이 움직임을 인식하게 되면 너는 감정
과 행동이기도 한 사고 작용이 생성이라는 관념에 바탕을 두었음을 알게 될 터이다.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사랑이야 말로 가장 높은 형태의 지성이다
이성이 없을 때만 사랑이 태어날 수가 있다
나의 두려움은 항상 알고 있는 바와 연관이 되었지, 알지 못하는 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내적으로 우리들은 욕망과, 욕구와, 관념과, 무수한 동기들의 포로이다.
내적으로 단순하고 아무것도 안되려는 사람의 이성은 장애물이 없고, ,두려움이 없고, 무엇을 향한 전진이 없기 때문에 놀라울 정도의
수용력을 지닌다.
 
삶은 관계의 문제이고, 정체하지 않은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의식, 공격적인 능동성이 아니라 기민하게 수동적인 의식이
있어야만 한다.
 
순간순간마다 사고와 느낌을 의식/비판이나 정당화 없이 자아의 활동을 의식
 
관계란 확실이 네가 너 자신을 발견하는 거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신적 존재의 안전한 벽들 안에서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들 대부분의 경우에는 관계가 사실상 고립의 과정
이고, 틀림없이 그런 관계는 고립하는 사회를 이룩하게 된다.
너 자신의 한계에 아직도 매달리면서 너는 세계 통일이니 세계 평화가 이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국가간이나 경제적이나 종교적이거나 사회적인 경계선이 존재하는 한 세계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관계는 자아를 노출시키는 과정이고, 자신의 이성이나 마음, 자기 자신도 모르는 터에 무턱대고 외적인 질서, 체제, 교활한 공식을 수
립 한다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는 이리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관계는 고립의 과정
이 아니라 너 자신의 동기와, 너 자신이 생각하고 너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네가 발견하는 행위가 되고 바로 그 발견은 해
방의 시작이요, 변혁의 시작이다
 
놀라울 정도의 아름다움과 슬픔과 기쁨을 지닌 삶의 광활한 공간을 이해하게끔 너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교육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두려움과 공식없이 참된 것, 진실한 것을 발견하는 것
현재의 교육의 기능이 이 썩어빠진 사회 질서의 흐름에 네가 동조하도록 그냥 도와주기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너에게 자유를 성장하고, 다를 사회를, 세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완전한 자유를 주는 것인가?
끊임없이 반항하는 자들.
 
우리들이 안정에 바싹 매달릴 수록 삶은 더욱 열심히 찾아와서 우리들을 밀어낸다.
 
수련은 네가 하기 싫어하는 무엇을 하게끔 만드는 과정이고 수련이 있는 곳은 사랑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을 알아내도록 노력하고, 그러면 아무런 두려움도 연관되지 않아서 네 마음은 아주 유연하고 융통성이 많아 지리라.
두려움으로 부터의 해방은 어떠한 시험이나 학위보다도 중요하다.
 
비교는 네가 제대로 보지 못하게 방해를 한다.
이성은 항상 비교하고 가늠하고 심판한다. 이성은 항상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찾아보고, 따라서 거기에는 사랑이 없다.
지식은 너로 하여금 무엇이 되도록 부추긴다.
교육의 참된 기능은 어린 시절부터 네가 어느 누구도 모방하지 않고 항상 너 자신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너 자신을 간직하고, 그것을 이해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자아는 아주 복합적인거라서 숨겨진 드러나지 않은 무엇이기도 하다.
이지적이 되기 위해서는 너를 노예로 만들고 짓누르는 모든 영향력을 타개해 나가야 되지 않을까?
너는 인생의 추악한 면들도 관찰해야 하고, 모든 것에 대한 의식이 살아 있어야 한다.
 
세상은 우리들의 것이다.
우리들의 대지, 너와 나의 것이다. 우리들은 하찮은 존재이지만, 그래도 우리들 또한 이 대지위에서 살고 우리들은 모두 함꼐 살아야만 한다. 항상 대지를 사랑한다는 것은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는 네 행복을 얻기 위해서 누구에게 의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
누구에게 의존한다면 너는 노예가 되고 속박이 시작된다.
 
누구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는 아느냐?
한그루의 나무를, 새를, 또는 애완동물을 사랑해서 비록 그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더라도 비록 너에게 그들을 제공하거나 너를 따르거나 너에게 의존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보살피고 먹여주고 소중히 아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너는 아느냐? 우리들의 사랑은 항상 불안과 질투와 두려움이라는 장애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만일 네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장터에서 물건을 사듯, 단순한 거래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대가로 무엇도 요구하지 않고 네가 무엇을 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않음을 의미한다.
 
너는 정면으로 어떤 사람의 얼굴을 정말로 본적이 한 번이라도 있느냐?
그를 빤히 쳐다보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를 살펴본 적이 있느냐? 우리들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를두려워 하고, 다른 사람들도 역시 두려워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런식으로 쳐다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무도 자신을 노출시키기를 원하지 않고, 우리들은 저마다 참혹함과 고통과 그리움과 회망따위 갖가지 꺼풀 뒤에 숨어서 경계를 하고, 너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 드물다.
 
인간은 철저한 불만을 기뻐하며 맞아야 한다. 인간은 철저한 불만을 누려야 한다. 전혀 불만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어떤 두려움에도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
 
두려움이 없을 때만 창조력을 얻는다.
너는 눈을 감고 아주 조용히 앉아 너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본 적이 있느냐?
네가 어떻게 나무들과 꽃을과 새들과 사람들을 보는지, 어떤 제안에 네가 어떤 반응을 나타내고 어떤 새로운 개념에 대해서 어떤 반작용을 보이며 네 감정이 어떠하고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 네 이성이 스스로 그 자체의 작용을 지켜본 적이 있을까?
너는 네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는지를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사고 과정을 영화구경하듯 그냥 지켜보기만 해라.
우리들은 남을 아끼는 진실한 감정이 없다.
P 208사물에 대해서 따스한 마음을 간직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삶에서 가장 위대한 행위이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느끼고, 가꾸고 소중히 다루는 일은 아주 중요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과 동물들과 꽃들을 보지 않는다면 어른이 된 다음에 너는 삶이 공허함을 느낄 터이고 아주 고독해 질 터이며 두려움이 늘 따라다니리라
 
왜 섹스를 과장하는가?
그것이 오히려 궁극적인 도피를 하는 길이며 자아를 망각하는 길이다.
살아가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자아를 강조한다.
삶이 지니고 있는 이율배반성이 문제이다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동정, 용서, 소유하는 관계, 질투와 두려움 이 모든 것은 사랑이 아닌 이성의 작용이다.
이성은 사랑을 타락시킨다.
 
모든 인간에 대한 존경심
두려움이 없는 존경심
 
존경심이 없는 곳에는 사랑도 없다
자비가 없고 연민이 없고 용서가 없는 곳에서도 사랑이 없다.
여러분은 모든 전통을 몰아내고 정말로 하고 싶은 무엇을 하세요!!!!!!!!!!!!!!!!!!!!!!!!!!!!!!!
나는 굶어 죽는다고 해도!!!!!!! 이 모든 장벽을, 이 모든 부담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내가 삶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참된 목적 또한 좌우 된다.
 
자부심은 굉장히 심한 허영심을, 이기적인 허세를 유발시킨다.
내가 누구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인물이라는 즐거운 기분을 강화
이상주의자란 실재하는 바로부터 도피하려는 개체인데, 그는 현재에서만 변모가 가능한 현실로부터 도망을 치는 셈입니다.
문제속에 해답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해답을 구하려고 하지 말고,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도록 합시다.
신앙은 종교가 아니라 우리들의 조건이 이루어 놓은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참된 종교를 아기 위해서는 두려움으로 부터 해방이되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거나 말거나 간에 삶은 끊임없이 나를 희롱하고, 나는 항상 마음의 상처를 입고ㅡ 좌절하고, 고통스러운 반응을 일으키고는 합니다. 따라서 내가 해야할 일은 이 모든 과정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알다싶이 우리들 대부분은 누구에게서인가 위안을 찾으려고 하고 책을 읽거나 라디오를 틀거나 기도를 드리거나 하며 그것으로부터 도망을칩니다.
아름다운것과 추악한 것을 의식하는 민감함
 
여러분은 질투를 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질투의 본질을 전혀 파고든 적이 없고, 사회와 모든 조직적 종교들이 그것을 무엇이 되려는 욕망을 바탕으로 삼고 있따는 점을 전혀 깨닫지 못했따. 질투를 파고들어 그 진실을 깨닫는 순간에 질투는 떨어져 나간다.
P259
강한자는 약한자를 왜 억압하나요?
여러분이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을 내세우고 과시하고 싶어 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하찮은 인간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랑해야 한다
 
 
죽음은 무엇인가?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만일 우리들이 알아낼 수 있따며 ㄴ이해할 수 있따면 죽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먹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습득하고 소유하고 비교하고 시기하고 이것이 우리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삶이다. 항상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대단한 인물이니까 꼭 존속해야만 한다 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죽음이 있고, 사랑을 알지 못한다.삶에 집착할때 죽음을 두려워 한다.
 
내적인 욕구는 외적인 관심을 굴절 시킨다.
내적으로 풍요로워 지면 물건을 소유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존경을 받는 사람은 위선의 꺼풀을 썼기 때문에 존경을 받는 사람보다는 이른바 죄인이 신과 가깝다.
 
인간들 사이에는 능력이 있어서 엄청난 불평등이 존재한다. 어떤 특정한 기능들에 우리들이 지위를 부여하는 한 불평등이라는 인식은 존재하게 마련이고 능력을 지닌 자와 능력이 없는 자 사이의 간격을 이어질 수가 없다.
사랑이 필요하다.
열등함과 우월함의 인식을 물리치는 것이 사랑이다.
 
 
관계에 있어서 심리적인 독립-관계로 부터의 독립이 아닌, 갈등과 불행과 고통과 두려움을 유발시키는 심리적인 의존으로부터 우리들 자신의 고독을, 공허함을 이해하는데서, 마음과 이성 속에 숨겨진 것들을 밝혀내는 데서 자유가 이루어 진다.
 
이지적인 사람은 절대로 정체하지를 않고, 나는 안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탐구하고, 항상 불확실하고, 항상 관찰하고, 추구하고 찾아낸다. 나는 안다라고 말하는 순간에 그는 이미 죽어버리고 만다.
무엇을 두려워 하고
어째서 두려워 하는가?
이상주의자는 위선자이다.
실재하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고 이해하는 대신에 자신과는ㄷ ㅏ른 어떤 인간이 되려고 항상 애씀
창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는 상태는 슬픈일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찾아와야 한다.
 
 
배우는 자
삶을 공부하며 배움이란 어느 특정한 시기의 볓가지 사실뿐 아니라 삶을 통해 모든 것을 관찰하는 능력을 뜻한다.
관찰하기 위해서는 비판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대상을 연구해야한다.
외적, 내적으로 삶의 모든 것을 관찰하는 사람
 
 
세계 전체를 생각하는 사람
 
취직과 죽음 이외에는 무엇으로도 이어지지 않는 시시한 몇가지 과목을 공부하느라고 그냥 나날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진지한 이런 문제들을 놓고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계의 거울
 
 
 
 
느낀점
 
나는 나를 알기를 포기했었다. 그것이 포기라는 것을 이 책을 읽은 후에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높은 이상만을 가지고 현실
에 허우적되고 있을 지금, 만날 수 있었던 최고의 조언들이 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내안의 모든 내면의 과정들을 관찰하려하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하다. 정말 신기하다. 정말 너무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정말 원하고 알고자 하면 늘 답이 나의 주변을
통해서 얻어지게 되었다. 이번에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를 읽게된 계기 또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회의감과 공허함의 원산지(?)가 어
딘지 몰라 갈피를 못잡던 내가
맞은편 책꽂이에 꽂혀있던 이 책을 집어 든 이후로 답을 얻게 된다. 내가 이책을 집어들 수 잇었던 것이 너무 신기하다.
삶은 미지 투성이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고 이해함으로서 자유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자유인이 되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이해하는 것. 그럼으로서 진정한 사랑과 아름다움 진리 또는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과정이 어떤 마침표가 있
는 것은 아니며 어떤 의도가 없이 순수한 것이다.)
 
 
아름다움
나란히 놓여있던 의자들을 보며 이것이 아름다운가, 누군가가 쉬거나 머무를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의 아름다
움-그러나 이것은 나의 언어의 궤변에 불과한 것이다. 지심도의 바다를 보고 아름답다. 라고 생각할 수 잇었던 것은 무엇인가. 그 자
연의 엄격함과 그 순간 모든 것을 포용하는 광활함과  절대적이며 순수한 그 살아잇는 바다를 보며 나는 이러한 생각을 했었던가? 그
저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 같은데, 나는 이 의자들을 보며 이것이 아름다운지 그렇지 않은지를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이성
의 소꿉놀이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진정 아름다운 것은 내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알고자 하는 이 과정이 아닌가?
 
내가 난민인권전문가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의 사고 과정을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나는 순수히 이것을 원하는가? 나는 어떠한 나의 만족을 위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가? 혹여나 어떠한 야망을 꿈꾸고 있는것은 아닌가? 나는 이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에 회의를 가지고 다시 한번 사려깊게 검토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 것이라면 나는 두발 벗고 이 일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시간을 삶을 난민을 생각하고 사랑할
것이다.그러나 나는 왜 이렇게 주춤하고 있는 것인가? 정말 나는 이 일을 원하는 것인가?
한번의 '동기' 라는 것에만 너무 의존을 하여 심지어는 밀어붙이고 있지 않은가? 주변의 시선에 사회적 위치에 밀려서  나자신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나 자신을 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 꿈을 떠벌리고 다니고 있었구나. 나는 이런 꿈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쉽지않은 길이고, 그러므로 나는 이세상에 없어서는 안될 특별한 존재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 는 그러한 생각들이 내 마음속에 더 크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왜 나는 그토록 타인의 관심과 사랑에 목메달고 있는 것인가?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지는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나는 나를 오히려 잊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나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사랑받기 위해 관심받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왜 잊혀지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 하는가?
 
삶은 관계라고 했다. 좋고 긍정적인 관계만이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 오히려 불편하고 그렇지않은 관계가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왜 그러한 것들을 두려워 하는가? 왜 세상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고 있는가? 추한것은? 추한것 또한 아름다움인 것 아
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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