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와 진리 그리고 아름다움-도올
존재란 무엇인가?
<희랍인들의 사상>
감각과 사유의 구분
존재는 오직 사유의 대상이지, 감각의 대상이 아니다
이 사유를 희랍인들은 이성이라고 하였다
항상 시각의 판단 만으로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존재계와 생성계
존재계-사유의 대상,
존재=실재real
생성계-감각의 대상(진짜 존재의 세계가 아닌, 현상(나타난 모습phenomena,appearance)이다)
mythos 상상
logos 실재, 이성, 말, 사유
그러므로 진리의 대상은 오로지 사유의 대상이다
지식 진지 진리
보충+
진리와 아름다움
진리란 무엇인가?
실제 real 에는 진짜, 가짜true, false라는 말이 해당되지않는다.
true의 명사형 truth
즉 진짜의 명사형 진리
true는 appearance
reality에 conform할 때 이것이 맛을 때 진짜라고 하고 그렇지
않을 때 가짜 라고 한다.
즉 사물의 형상이 실재와 합치되는가? = 진리
종교는 진리(truth)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그것은 신앙(belif)의 영역이다.
과학에도 최종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리는 결코 final이 없다
진리는 독점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더이상 없는 진리라는 것은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은 어떠한 진리를 확립했다고 하더라도 그 진
리를 깨고 나오면서 새로운 과학이 나오며 발전한다
아름다움beauty
아름답다고 하는것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은 실재와의 대응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느냐가 문제지 사실과의 대응관계
아름다움은 실재와의 대응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느냐가 문제지 사실과의 대응관계
가 필요가 없다
도올은 -아름다움은 우리의 체험에 있어서 우리의 체험의 요소들(단위의 어려움이 있으나) 간의 상호적응에서 발생한다. 고 말한다.
체험요소, 그들 서로간의 배타현상이 없는 상황을 아름답다고 한다
체험의 각 요소들의 조화
中은 천하의 근본이고
和는 달도다.
달도:달성해야할 목표로서의 도
아름다움 그것은 우리의 체험의 요소들이 달성해야할 목표
아름다움 그것은 우리의 체험의 요소들이 달성해야할 목표
하나의 조화로운 모습
discord 불협, 불화가 없는 것
불협이라는 것은 그만큼 그 요소들 간의 울림이 강하다는 것
ugly
美
醜
악은 부정적 개념이나,
추는 긍정적 개념이다.
discord 불협, 불화가 없는 것
불협이라는 것은 그만큼 그 요소들 간의 울림이 강하다는 것
ugly
美
醜
악은 부정적 개념이나,
추는 긍정적 개념이다.
추 적극적 아름다움이다.
고갱이나 고흐가 그것을 활용했던 것 처럼
어떤 경우에도 고정적인 아름다움은 없다.
어떤 경우에도 고정적인 아름다움은 없다.
아무리 못생겼다고 해도 성형을 해서 아름다워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성형은 인류가 고안해낸 죄악이다.
왜 고정적 아름다움의 기준을 가지고 이 세계를 바라보는가?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어떤 못생긴 얼굴이라도
반드시
아름다울 수 있
다.
모든 불협discord은 반드시 조화로 진행한다.
다.
모든 불협discord은 반드시 조화로 진행한다.
반면 미녀가 추녀로 전락하는 것은 잠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또한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우주의 에로스Eros이다.
그래서 자연현상에는 아름다운 무늬가 많다.
완벽한 아름다움은 죄악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완벽한 형상의 아름다움formal beauty을 추구했다.
idea=form=eidos
희랍의 철학
완벽한 균형의 미
그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아름다움이 고착되어(희랍예술의 형상적
완벽성 때문에) 서양예술은 2천년을 정체했다.
그러나 동양예술은 끊임없이 동적으로 발전하였다.
완벽한 아름다움은 하나의 저주이다
완벽한 아름다움 처럼 ugly 한것은 없다
어떠한 ugly의 요소가 있어야 끝없는 아름다움을 향해갈 수 있는
건덕지가 있는 것이다.
인생의 낮은 단계의 완벽한 아름다움보다는 고매한 이상을 가
어떠한 ugly의 요소가 있어야 끝없는 아름다움을 향해갈 수 있는
건덕지가 있는 것이다.
인생의 낮은 단계의 완벽한 아름다움보다는 고매한 이상을 가
진 불완전한 아름다움이 더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끊임없는 동적과정 dynamic process이다
아름다움은 인간이 부여하는 것이다
<동양철학>
크고토실토실한 양 ->美
美<->惡
善<->不善
동양인들은 악이라는 것을 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윤리적 가치
에 있어서 선에 반대 되는 악이라는 것은 없다.
선과 악은 대립
<동양철학>
크고토실토실한 양 ->美
美<->惡
善<->不善
동양인들은 악이라는 것을 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윤리적 가치
에 있어서 선에 반대 되는 악이라는 것은 없다.
선과 악은 대립
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양번역술어로서의 현대어의 개념일 뿐이
다.
'악'은 혐오스러움의 '오'이다. 오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다.
선하지 않다는 것이 악하다는 것이 아니다. 악은 실체일 수가
없다. 그래서 불선이라고만 한 것이다. 선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가 싫어한다고 해서 악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
'악'은 혐오스러움의 '오'이다. 오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다.
선하지 않다는 것이 악하다는 것이 아니다. 악은 실체일 수가
없다. 그래서 불선이라고만 한 것이다. 선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가 싫어한다고 해서 악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불선일 뿐이다.
동양인의 윤리적 불선은 심미적인 추함일 뿐이다.
선도 선이 아니고 악도 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언어적, 이데아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동양인의 윤리적 불선은 심미적인 추함일 뿐이다.
선도 선이 아니고 악도 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언어적, 이데아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윤리적 가치는 궁극적으로 심미적 가치로 포섭된다.
아름다움은 진리나 선보다 훨씬 더 폭넓은 개념이다.
아름다움은 진리나 선보다 훨씬 더 폭넓은 개념이다.
<노자오빠의 말씀>
천하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추한것일 수도 있다.
즉 아름다움과 추함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진정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결국 아름다움의 요구가 불선, 악한 행동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다.
<노자와 불교사상>
우리는 이 우주를 아름답게 아름답게 바라봐야한다.
인생을 아름답게 아름답게 바라봐야한다.
인간을 아름답게 아름답게 바라봐야한다.
인간이 사는 이 사회를 아름답게 바라봐야한다.
그런데 이 아름다움은 항상 추한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코 아름다움과 추함은 2원론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추함을 외면하여서는 안된다.
그 추함을 항상 섭렵하며 우리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다
<기독교사상>
그러나 기독교사상은 선악을 이원화시킨다.
서양사람들의 사고가 적용
이러한 윤리적 2원론은 상당히 위험한 것이다. 윤리적 2원론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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