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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분 에 물 주 기

理性-도올

by 두치고 2011. 12. 28.
플라톤의 이성=기하학적이성(수학을 하는 능력 계산을 하는 능력)
그것은 시공을 초월하는 절대불변의 존재
따라서 그러한 이성은 우리의 일상적 삶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
즉 그것은 우리와 관련없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speculative reason
사변이성
순수하게 추상적인 이성
 
이성적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분리할 수 없는데,
플라톤은 분리했었다.
 
 
The Function of Reason 이성의 기능-화이트헤드
 
역사history=시간time(인간의 역사가 아닌 우주의 역사, 즉 시간의 흐름)는 사건의 과정속에서 두가지 주된 경향을 노출시킨다.
History discloses two main tendencies in the course of events. One tendency is exemplified in the slow decay of physical nature.
하나의 경향은 물질적 성질의 천천히 일어나는 해체 속에서 구현된다.
(필통에도 역사가 있다, 물질적 성질은 분명히 decay가 된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해체된다.)
 
With stealthy inevitableness, there is degradation of energy. 
눈에 띄지 않는 필연성 속에서 에너지의 현상 에너지도 타락한다.(Entropy-무질서의 정도/물과잉크가 구분이 안되는 상태/잉크와 물이 분리될때는 질서가 있다.즉 역사는 결국 무질서로 간다/질서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것/청소를 한다는 것은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청소가 필요한 것이다.)
 
 
The sources of activity sink downward and downward.
The other tedency is exemplified by the yearly renewal of nature in the spring, and by the upward course of biological evolution
활동의 원천은 아래쪽으로 아래쪽으로 가라앉는다.그들의 물질은 소모되고 있다.또 다른 경향은 매년 봄마다 자연의 재생에 의해서 그리고 생물학적인 진화의 상향적 과정에 의해서 구현된다.
(어떻게 자연에 이런 현상이 있을 수 있는가? 봄이 온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생명의 진화는 모든 것은 해체가 된다. 그러나 하향에 역행하는 upward가 있다. 그것을 거꾸로 역행하는 것. 새싹은 기적이다. 
역사에 있어서 상향의 대표적인 예가 생명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내 몸이 내몸다운 이유이다. 그것은 죽어 없어진다는 것의 반역이다.)
이성은 역사속에서 창조적인 요소의 자기 규율이다. 이성의 기능이 없이는 무정부적인 혼돈일 뿐이다.
수학적 개념의 이성은 틀린 것이다!
이성은 물리적 성질의 해체에 거역하는 창조적인 힘이다.

이성은 궁극적으로 엔트로피를 거역하는 하나의 자연의 힘에 근거한 것이다.
즉 우주 자체가 이성적 힘이 있는 것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은 우주에도 이성적 목적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긍정한다.
The function of reason is to promote the art of life.
이성의 기능은 삶의 기술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찰스다윈의 적자생존의 법칙
The survival of the fittest
우주전체의 과정을 놓고 본다면 
우주전체의 진화를 논한다면 적자만이 생존한다는 진화의 이론은 엉터리다.
바위와 사람의 비유
생명도 결국 무기물에서 진화했다고 한다면, 적자생존의 적응력만으로는 진화를 설명할 수 없다.
적자생존을 환경에로의 적용이라고 규정한다면 바위야말로 생존률이 가장 높다.
찰스다윈의 이론은 우주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되지 않는다.
적자생존의 핵심은 오히려 
환경에 순응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자기에게로 적응 시키는 능동적 능력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은 위대한 것이다.
생명은 특질은 반역이다.

능동적으로 환경을 변역시키는 것. 즉 우리의 삶의 조건, 삶의 기술을 증진시키는 능력이 바로 이성이다.
비버에게도 분명히 이성이 있다. 인간이 이 세계를 괴변하고 이 삶을 더욱 증진시키려는 행위가 이성이다.
I now state the thesis that the explanation of this active attack on the environment is a three-fold urge:
1) to live, 2)to live well 3)to live better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사는 것, 잘 사는 것, 더 잘사는 것 이러한 욕구가 있다.
In fact the art of life is first to be alive, secondly to be alive in a satisfactory way, and thirdly to acquire an increase in satisfaction.
사실상 삶의 기술은 첫번째로 살아남는 것이며, 두번째는 만족스럽게 사는 것이고, 세번째는 만족에 향상을 성취하는 것이다.
생존->만족->만족의증가
 
인간이 근원적으로 살려고 하는 어떤 충동이야 말로 이성적 욕구이다.
즉 이성도 삶의 욕구 이다.
엘랑 비탈-삶의 약동
고기가 연못에 튄다.
생명은 시간의 거역이다.
청년은 미꾸라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을 위대하게 만드려고 하는 노력, 이성
 
'Fatigue' is the antithesis of reson.
피로는 이성의 반대이다.
피로는 생명의 상향을 좌절시키려는 물질적 퇴행현상이다.
 
이성은 율리시즈(오디세우스)의 모험이다.
내가 말하는 이성은 플라톤의 이성이 아닌 율리시즈의 이성이다.
Thirst목마름
decay의 진행
순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순응을 거부하는 것.
사변이성과 실천이성은 2원론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