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제력이 강한 편인가요? 묻자 “자제?”, 잠깐의 포즈가 이어진다.
“경우에 따라 달라요. 제가 밀가루 중독이에요. 그래서 탈이 자주 나는데, 며칠 더 조심하면 확실히 나을 수 있는데도 계속 먹어요. 빵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하는데 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빵을 산다.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일 산다. 이 년 전까지는 술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서 빵 먹는 거 말고는 낙이 없었다.
“빨리 먹고, 폭식하고, 작업할 때는 하루 종일 먹어요. 4집 때까지는 그게 살로 가고, 몸에는 문제가 없었어요. 10킬로그램씩 찌고 활동하면 빠지고 그랬는데 이번 앨범 하면서 몸이 무너지더라고요. 식습관이 나빠요. 술 마실 때도 안주를, 맵고 단 걸 번갈아가면서 먹어야 해요. 밤새 술 마시면 밤새 먹어요. 날것을 좋아해서, 녹음하다가 길 건너 횟집에서 회를 떠와서 먹고 그랬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누군가에게 지금 들어간다고 문자를 보내고 싶다는 그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문자를 보내는 대신, 그는 깊은 밤에도 불이 켜져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빵을 산다. 빵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저 비닐봉지에 담긴 단팥빵으로 족하다. 그건 빵이 아니라 ‘하루를 마치고 잠들기 전에 나를 채워줄 수 있는’ 무엇이다.
하지만 빵이 그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을까? 애초에 그 결핍은 채워질 만한 것이었을까? 결코 그럴 리 없다는 것을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건 그저 한순간의 망각을 위한 응급조치 같은 것일 뿐, 하루가 끝나고 혼자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의 어두운 공허 위에, 빵 부스러기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나는 상상한다.
- PAPER 2008년 11월호, 황경신, 어느 특별한 저녁에 대한 기록, 이석원 인터뷰 '사랑이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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