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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렁 이 의 길/인 권 활 동 기 록 - 1 2 ~ 2 3 년

굴님의 방문

by 두치고 2015. 7. 24.


1. 1층에서 면담을 하고 있는데 굴님이 갑툭튀. 깜짝 놀라 인사를 드렸더랬다. 첫만남때와 마찬가지로 만나자마자 여러가지 이야기를 내어 놓으시는 굴님. 본국의 가족들에게 등을 돌리고, 가족이 자신을 등 돌린 이야기를 이전 처럼 하셨다. 이 분은 언제나 사람들을 만나면 꼭 하는 이야기가 이 이야기일 수도 있겠구나. 그만큼 자신에게 큰 일이었으며 일이구나. 싶더랬다. 그 이야기 속에는 굴님이 어렸을때 굴님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는 당신을 예뻐해주어 항상 스프에서 고기를 자신에게만 덜어주었고, 그게 어머니에게로부터 조차 질투를 샀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아버지가 자신에게 모든 정서적, 경제적 지원을 끊었을 때의 아픔은 얼마나 클까.. 사랑은 이해없이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가슴에 남는다.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했던 그의 삶... '한국에서의 삶이 참 고단하다'던 그의 토로를 나는 오늘도 그저 들을 뿐이다. 지켜볼 뿐이다.


이사 때문에 어제 난센 멤버들과 유통기한이 지난 과자를 다 버렸다. 그런데 굴님이 그 쓰레기 봉투 속의 과자를 집어 들더니 괜찮다며 먹을 수 있다며 먹었다. 극구 말려서 그 뒤는 -내앞에서는- 안드셨지만, 내가 그 상황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데 곤혹스러었다. 오래된 쌀을 오래된 봉지에 탈탈 쓸어 담으며, 난센에 남는 것이 없는지. 나누어 줄 것이 없는지 재차 물어보는 그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이미 이런 상황에 통달한 그의 모습에서 같은 문화권의 비슷한 나이대의 프님이 생각났다. 프님은 나에게 항상 이렇게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내장을 내어놓고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좌절스럽다고 했다. 굴님의 한국 생활은 약 16년. 그 지난한 세월을 살아 왔던 그로부터 언어를 빼앗겼다. 문득 스치는 그의 표정으로부터, 그의 지친 피부와 담담한 눈동자 그리고 공백을 쫓는 입술로 부터, 그의 삶을 그대로 느껴버렸다.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살아 왔을 오늘과 어제 지난해와 제작년이 표정에 녹아 있었고.. 그 표정을 느낀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2. 새로 이사가는곳에서 굴님이 본국의 요리를 해주신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새로가는곳은 부엌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있을때는 몰랐는데 - 참 힘들기도 했는데 - 사라진다니 굉장히 아쉽다. 굉장히. 굉장히 아쉽다. 이제,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는 즐거움에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 여러가지 다양한 시도도 해보고, 그 요리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다양한 사람들과 풀어내고 싶었는데.. 참 아쉬웠다. 굴님도 아쉬워했다. 부엌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하셨다. 부엌은 집에서 뿐만 아니라, 정당에서도, 종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잠깐 엉뚱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과연 놀라운 이야기였다! 나는 그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 물었다. 그는 어떤 부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조직이 좋은 조직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이야기인데, 일을 하다보면 밥을 꼭 먹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좀 더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다른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가 더 물어보지 못했다. ㅜ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 그리고 맛있는 밥 좋은 밥을 준비하고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크다. 내가 오늘 먹은 음식은 나를 구성한다. 그 음식은 내 피부가 되기도, 내 똥이 되기도, 내 생각이 되기도 한다. 그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그 사람을 알아가고, 그 사람과 가까워진다. 또, 그 사람만의 손길이 스친 맛이 탄생한다. 같은 재료, 같은 레시피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맛이 있다. 그 맛의 차이는 그 사람 고유의 개성이기도 하고, 가치이기도 하며, 손바닥의 크기와 손가락의 길이, 심지어 손톱의 모양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