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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렁 이 의 길/인 권 활 동 기 록 - 1 2 ~ 2 3 년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by 두치고 2015. 7. 22.

1. 관계를 위해서는 손해를 보기도 해야한다. 내가 사실 명백히 손해를 보는 일일 지라도 그것으로부터 관계가 시작되는 것. 그는 그의 긴 인생의 경험을 담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관계를 보고 지금 당장의 이익이 아닌 긴 시간을 내다 볼 수 있는 내공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2. 팁이 이사짐 정리를 도와줬다. 우리 중에 제일 열심히 일을 하였다.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허니나 나랑 비슷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3. 팁이 행복하냐고 물었다. 행복은 바람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팁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보았다. 팁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팁은 행복보다도 기쁨과 만족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 당장 고통 속을 걷고 있더라도 (등산을 예로 들었다) 그 과정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다고 했다. 나도 행복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는 않다고 했다. 반면 행복과 기쁨이 동떨어진 것이 아닌 밀접하다고 느껴진다고이야기했다.

4. 팁 자신은 삶에서 성공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원하는 것을/목표에 성취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자유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당신에게 자유란 무엇이냐 물으니 나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가 비유를 한 것 중 누군가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이라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수긍이 되었다. 내가 삶에서 성공한 일들을 떠올렸다. 나는 대학도 그렇고 일자리도 그렇고, 방글라데시도 그렇고 내가 원하는 것은 대부분은 이룰 수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 실패에 큰 상처를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 별로 그 기억이 되새기고 싶지 않을 정도까지는 아니니까. 쪽팔리는 건 쫌 있는 것 같다-) 그런 비교적 실패의 경험이 없는 삶을 떠올리니 뭔가 내 인생이 쉽게 느껴지는 것 같아 한편으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을 이으니 내가 다른 이들에 비해 이미 받을 수 있었던 조건들이 여러가지 떠올랐고 그 중 대표적인 국적 이야기를 꺼냈다. 수단 국적과 한국 국적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팁을 만나서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래서 얼마나 그 하나만으로도 삶의 기회와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느낀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한편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다양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 성공일 수도 있다고 했다. 굉장히 쉬운 이야기이고, 비릿한 이야기 이기 쉽다. 감히 내가 그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낼 자격이 있는가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당신의 삶은 다른 측면에서 이미 너무나 성공해왔었던것이 아닐까요? 라고

5. 생일 선물을 몇주 내내 (약 2달 전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골라라고 이야기를 해서 미루고 미루다가 이어폰을 고르게되었다. 오늘도 미루고 미루다가 이어폰을 찾아보는 사태까지 이르렀는데, 내가 고른 이어폰의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고가의 이어폰-블루투스 기능이 탑재된-을 사라고 막 머라고 그랬다. 첨엔 무조건 싫다고 하니 당연히 팁이 물러서지 않아서 디자인이 싫다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는 팁. 다른 기계들도 들어야하는데 그 기계에 블투스 기능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는 팁. 나도 절대 물러설리가 없다. 정말 필요 없다고 단호히 이야기했다. 그러니 이것도 사고 책도 사주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왜 ? 가격을 신경쓰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니 팁은 내가 자신에게 해준 것은 더 크다며 내가 난센을 통해 한 활동들을 이야기하기 시작. 나는 그 말을 끊고 단호히 이야기했다. 그건 내 일이 아니라 난센과 다른 사람들이 도와준 것이라고. 그러나 나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하여 나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했다. 나에게 있어 팁이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람인지. 내가 여러가지 어려움때문에 난센을 그만둬야할까 생각하며 -많은 애정을 들였기에- 힘들어 했을때도 팁을 비롯하여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행복했고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팁이 있었기에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것이 얼마나 내삶을 풍요롭게 하는가-자비- 에 대해 알수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팁도 할머니를 도와줬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공감해줬다. 또 팁은 항상 내가 한 일보다 더 크게 나를 이야기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 팁은 이런걸 더 많이 주든 작게 주든 또는 주지 못하든 이미 나에게 충분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할때 팁의 눈이 쫌 반짝였던 것 같다. ㅋㅋ 또 이 이어폰이 팁이 생각했던 것만큼 최신? 은 아니지만 내 삶에 있어서 얼마나 의미있는 선물이 될지를 설명했다. 내가 힘들고 지칠때 나를 가장 위로해줬던 것들 중 하나가 노래이고, 이 이어폰은 그래서 내 삶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고. 팁이 그런 이어폰을 선물해주니 너무너무 가치가 있는 것이고 감사한 선물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결론은 내가 win. 내가 원하는 이어폰을 골랐다. 그리고 저녁도 다음번에는 내가 사기로 (이미 너무 많이 팁이 밥을 샀었다)

6. 팁의 공장에 85년도부터 일하고 있는 아저씨가 있다고 했다. 왜 그 사람이 그 속에서 30여년을 일해와야했는지, 알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 세월에 절로 말을 잃었다.

7. 집으로 가려는데 장맛비가 억쑤같이 쏟아졌다. 오늘 청소하느라 허리를 무리해서 아픈데 저 비까지 맞으며 집으로 갈 수 없을 것 같아 카톡택시를 기다렸다. 근데 비가 오니 모든 택시가 오지를 않고 예약도 되지않고..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은 많고.. 하염없이 처마밑에 있다가 안되겠다 싶어 비를 줄줄 맞으며 택시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맞고 서있으니 술한잔 걸쳐 얼굴이 벌건 중년의 회사원 아저씨가 택시를 잡으러 왔다.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회사생활과 삶의 고단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안되어 우리는 같이 우산을 쓸테니 이거 잠시만이라도 써라며 우산을 주신다. 너무너무너무너무 감사했다. 나는 그런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용기낼 수 있었을까. 평범한 아저씨들이었는데. 아직도 참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나 타인의 경이로운 배려를 받아 살아가고 있구나 싶다. 그러고 한참을 서 있는데 딱 붙은 치마를 입은 한 여자가 큰 우란을 쓰고 저 앞으로 뚜벅뚜벅 가더니 모처럼 온 택시를 잡아 채어 갔다. 썅. 욕이 절로 나왔다. 그후 한참을 서 있는데 여자친구의 허리를 주물럭거리며 나타난 한 느끼한 커플이 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을 기다린 끝에 온 택시를 타버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두번은 당할 수 없어서 "저기요 이렇게 이렇게(나와 두 아저씨를 차례로 가르키며) 먼저탄 후에 타셔야하는게 맞는 것 같은데요" 라고 이야기하고 택시를 탔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쉽게 혐오하기 쉬운 가치와 태도를 가지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감사한 사람들도 있다. 둘이 분리가 될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나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순간에서 어떻게 만나냐에 따라 타인은 천국이 되기도 또 지옥이 되기도 한다. 판단을 배제하고 사람들의 좋은 모습만 보고 사람들에게 좋은 태도를 취하고 좋은 언어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이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사람으로 남고싶다는 욕구라기 보다는,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좋은 기운들로 충만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 라디오의 노랫말 중 기억에 남는 부분.
우산없이 내리는 비속을 걷다.
우산 없이 비 속을 걸어갔던 오늘. 그리고 걸어가는 것 같은 시간들을 비와 함께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