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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수 염 고 래/공 부

욕망과 해탈의 심리학; 정신분석학

by 두치고 2013. 12. 21.

제1강 마음으로 들어가는 두 가지 길

1. 마음, 의식 그리고 기억

기억이나 기대를 가지지 않은 존재들은 결코 ‘비어 있음’이나 ‘없음’과 같은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단지 있는 것과 지각되는 것만을 표현할 것이다. 그런데 있는 것과 지각되는 것은 이러저런 사물의 현존이지 결코 어떤 것이든 그것의 부재는 아니다. 기억하고 기대하는 능력이 있는 존재에게만 무엇이 없다는 것이 가능하다. 아마 그는 어떤 대상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것과 만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대상을 발견한다. 이때 그는 기대를 좌절시키는 것 앞에서 원래의 기억을 상기하게 되고, 자신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자기는 ‘없음’과 조우했다고 말하게 된다. (…)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된 대상의 관념 속에는, 같은 대상이 ‘존재한다’고 생각되었을 때의 관념보다 더 적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관념은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의 관념에 더하여, 다른 것에 의해 그 대상이 없어졌다는 표상까지 합쳐진 것이기 때문이다.??창조적 진화

-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론 10장: 기억을 통해 과거가 존재, 지각을 통해 현재가 존재, 기대를 통해 미래가 존재한다.



2. 의식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 베르그손, 창조적진화 2구절: 없음=있음+1, 순수한 없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없음은 머리 속에서만(기억이나 기대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 베르그송(H. Bergson, 1859-1941)은 기억이나 기대가 없다면 ‘없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베르그송은 기억이나 기대를 동일한 차원에서 열거하고 있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기억이다.



3. 기대란 기억이 없다면 전혀 불가능하다.


- 창조적 진화, 즉 미래로의 진화를 형이상학적으로 구성하려고 했던 베르그송으로서는 기대라는 미래적 의식을 강조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 베르그송의 통찰은 우리의 내면이나 타자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다.



4. 우리의 내면은 기억의 흔적들로 구성된다.

- 기억의 중요성은 정치철학적 지평에서 더 부각될 수 있다.
- 푸코(Michel Paul Foucault, 1926-1984)의 고고학이나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의 역사철학은 바로 억압적 기억과 해방적 기억 사이의 투쟁이다.

  - 강요된 기억 / 사적기억과 공적기억.

  - 내가 기억을 달리하면 다른사람이다

  - 기억의 재구성, 자기자신을 정당화 하지 못하는 이들을 정당화 시키기 위한. 미세한 역사의 따름. 기억. 




제2강 트라우마를 다시 기억하기 혹은 정신분석학



1. 트라우마

◇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결정적인 심리적 외상이 히스테리 현상의 원인이라고 해서 외상이 ‘발병인자’로서 증상을 일으키고, 이후에는 이 증상만이 계속해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심리적 외상(좀 더 정확하게 말해 외상에 대한 기억)이 이물질의 형태로 존재하고, 이 이물질은 한번 침투하면 멈추지 않고 오랫동안 원동력으로서 작용한다. 매우 흥미로운 증상을 통해 이에 대한 증거를 발견해 내었는데, 이는 우리들의 증상에 대한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실제적으로 중요한 도움을 준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우리는 ‘환자가 히스테리의 원인이 되는 사건을 다시 완전하게 기억해 내고 동시에 그 기억에 얽혀 있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면, 그리고 환자가 그 사건에 대하여 가능한 한 상세하게 진술하고 감정들을 말로 표현하게 된다면, 개개의 히스테리 증상은 곧 소멸되고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치료법에는 회상에 감정이 개입되지 않으면 대체로 전혀 효과가 없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의 심리적 과정이 가능한 한 생생하게 재생되어야만 성공을 거둘 수가 있는 것이다. 즉 ‘발생 당시의 상태status nascendi’ 그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것이 ‘언어로 표현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극 증상인 경련, 신경통, 환각 등이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처음 발생 당시의 상태가 재생될 때, 그때처럼 강렬하게 다시 한 번 그 증상들이 나타나고 그 후에는 영원히 소멸된다.「히스테리연구」「히스테리 현상의 심리 기제에 대하여: 예비적 보고서」(1893)

- 히스테리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기억과 관련된 이상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기억하기 싫은 기억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 프로이트는 선택한 방법은 자유연상이나 최면의 기법으로 트라우마를 기억해내게 한다.

- 죽음은 제도다. 인간은 기억하기 위해 장례식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기억 시키기 위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트라우마. 가 이것과 비슷하다. 

- 너무 큰 상처는 기억을 안하려고 한다. 기억하기 싫은 것을 기억하기. 

- 왜 기억하기 싫을까?

- 기억하기 싫은 것들은 어떻게 우리의 내면에 남아 작용 하는가?

- 인간은 어떤식으로 상처받는가?



2. 알라야식(저장+의식)을 끊기 혹은 불교

◇ 의식은 모든 종자들을 포함한다. 의식의 이러저런 변형들은 종자들의 상호 영향으로 진행되며, 그 때문에 이러저러한 분별들이 발생한다. 「유식30송()」18

- 불교는 고통의 치료학이라고 할 수 있다.
- 불교에 따르면 고통을 낳는 것이 집착이고, 따라서 집착이 해소하면 고통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 집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집착과 대상에 대한 집착이다. 이것을 보통 아집(我執, )이나 법집(法執, dharma-gr?ha)이라고 부른다.
-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 320?-400?)는 집착을 제거하려는 직접적인 노력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 집착, 그리고 고통 사이에 벌어지는 복잡한 논리를 체계화한다. 이것이 바로 유식불교다.
-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유식불교에서도 ‘기억’을 중시한다. 그것이 바로 알라야식()이다.


3. 알라야식의 의미

- 알라야식은 ‘저장’을 의미하는 ‘알라야()’라는 말과 ‘의식’을 의미하는 ‘비쥬나나()’로 구성되어 있다.
- 히말라야(himalaya)는 눈[雪]을 의미하는 ‘힘(him)’과 ‘저장’을 의미하는 ‘알라야()’가 결합되어 있는데, 그래서 히말라야는 흔히 설장산(雪藏山)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 중국에서는 알라야식을 ‘저장 의식’이란 의미로 ‘장식(藏識)’이라고 번역했다.
- 유식 불교에 따르면 행동이나 행위를 의미하는 업(業, karma)의 결과가 씨앗처럼 알라야식에 저장된다.






제3강 꿈이나 사소한 실수들의 심오한 의미

1. 정신을 분석하는 세 가지 방법

◇ 환자들의 정신분석의 기본 규칙에 따르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떠오르는 관념들을 연구하는 것만이 무의식을 발견하는 유일한 기술적 방법은 아닙니다. 그 외에도 두 가지 방법이 더 있습니다. 하나는 환자들의 꿈을 해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자들의 농담이나 실언 또는 우연한 언행들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에 관한 다섯 차례 강의」

- 정신분석학의 기본 공식은 “기억하기 싫은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 프로이트가 개발한 기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 첫 번째는 자유연상의 기법이다. 이것은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뇌리에 떠오르는 관념들을 자유롭게 연상하도록 함으로써 억압된 것, 즉 기억하기 싫은 것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오늘 생각나는게 있어요? 붉은 치마가 생각나요. 왜 붉은치마? 이런 식으로..)

- 두 번째는 환자의 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은 꿈의 상태에서 자아의 저항은 약화된다는 측면에 주목한 것이다. 

- 세 번째는 환자들의 일상생활에서의 실수 행위에 주목하는 것이다.

- 기억하기 싫은 이유 중 하나: 사회에서 억압하기 시작하면 기억하지 못함. 기억하기 싫어짐. 

- 그래서, 기억하기 싫은 것 대부분이 성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다. 

- 꿈을 선택한 이유;모두가 꿈을 꾸기 때문에. 망상에 걸린이든, 그냥 사람이든..



“심리학 조사를 통해 꿈은 정상에서 벗어난 일련의 심리적 형성물의 첫 번째 구성 요소라는 것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 밖의 심리적 산물 중 히스테리성 공포증, 강박 관념, 망상은 의사가 실용적인 이유에서 연구하는 것들이다. 꿈에-나중에 알게 되듯이- 그와 유사한 실용적인 의미가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만큼 실례로서의 이론적 가치는 아주 높다. 꿈-형상들의 기원을 해명할 수 없는 사람은 공포증과 강박 관념, 망상을 이해할 수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치료에서도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2. 억압된 소망의 실현, 꿈.

◇ 생후 18개월 가량 된 아주 어린아이의 꿈을 조사해보면, 대단히 단순하며 설명하기 쉬운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항상 낮에 품었던 소망의 실현을 꿈으로 꿉니다. 그런 단순한 문제를 푸는 데는 특별한 해석의 기술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그 어린아이가 그 전날 겪었던 경험을 물어보면 되는 것이지요. 어른의 꿈도 어린아이의 꿈과 똑같이 꿈을 꾼 날에 떠오르게 된 소망과 충동의 실현을 내용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아마도 그것이 꿈의 수수께끼에 대한 가장 만족스런 해결책일 것입니다.

(…) 이에 대해 가장 강경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른의 꿈은 내용이 대개 해석하기 어렵고 소망의 실현과 상당히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이제 그 문제에 답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되는 이유는 꿈의 내용이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꿈을 꾼 사람에게 내재하는 심리 과정을 말로 표현하면 원래의 내용과는 상당히 달라지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아침에 깨어나서 어렴풋이 생각나는 꿈을 애써 말로 담아내는 꿈의 외현적인 표현과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꿈의 내용은 서로 크게 다릅니다.

이런 꿈의 왜곡은 앞서 히스테리 증상의 형성을 조사하면서 알게 되었던 것과 똑같은 과정입니다. 꿈의 경우에도 히스테리 증상과 마찬가지로 역시 정상적인 힘들이 꿈의 형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꿈을 말로 표현하는 이야기는 무의식적 꿈의 내용을 왜곡하여 전달하게 되는데, 이 왜곡이 생기는 이유는 자아가 지닌 방어력, 즉 저항력 때문입니다.「정신분석학에 관한 다섯 차례 강의」

- 프로이트는 ‘잠재적인 꿈’(=‘잠재몽’=‘꿈-사고’)->억압된 용망/을 독해하려고 한다.
- 프로이트에게서 꿈은 억압된 소망과 충동의 실현이라고 정의된다. 다시 말해 억압된 것이 자아가 약해지는 틈을 타서 의식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 ex. 집 안에서 만찬 파티를 열고 싶었는데 음식이라곤 훈제 연어 밖에 없는 거에요. 밖에 나가서 뭐라도 좀 살까 했지만, 마침 일요일 오후여서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았을 거라는 생각이 듦. 그래서 주문 요리집에 전화를 걸려 하니까 전화가 고장남. 그래서 할 수 없이 만찬 파티를 포기함. 

해석: '어떤 욕망이 실현되었는가?' 그녀에게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은 그 친구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의 친구는 말랐는데 그녀의 남편은 통통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결국 만찬은 그녀와 친구 사이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이었고, 만찬의 좌절은 그녀의 친구가 통통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그녀의 소망을 반영한 것이었던 셈. 


- 자기 욕망에 정직한 것. 


-‘ 외현적인 꿈’->현시몽(꿈내용)에서 ‘잠재적인 꿈’으로 잠입하는 방식으로 프로이트가 사용했던 방법은 자유연상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 외현적인 꿈의 내용에서는 꿈의 진정한 의미를 항상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즉 꿈은 전날의 경험에서 출발하며 충족되지 못한 소망의 실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에서 깨어났을 때 기억으로 알 수 있는 외현적인 꿈은 바로 억압된 소망의 위장된 실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종합해보면 무의식적인 꿈의 내용이 어떻게 외현적인 꿈의 내용으로 왜곡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꿈-작업’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우리의 가장 깊은 이론적 관심의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꿈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더 정확히 표현하면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두 가지 독립된 심리적 체계 사이에서 예기치 않았던 심리적 과정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발견된 심리적 과정에서 특히 눈여겨볼 것은 ‘응축’과 ‘전이’ 과정입니다. 「정신분석학에 관한 다섯 차례 강의」
- 어른의 자의식은 너무 강해서, 꿈마저도 조작한다. 



3. 잠재적 꿈의 왜곡 과정, 꿈-작업.

- 프로이트는 잠재적 꿈이 외현적인 꿈으로 왜곡되는 과정, 즉 ‘꿈-작업’에 주목한다.
- 「꿈의 해석ㄴ에 따르면 ‘꿈-작업’의 주요한 메커니즘은 다음 다섯 가지로 중요하게 거론되고 있다.
- 첫 번째는 응축condensation, 두 번째는 전위displacement, 세 번째는 연극화dramatization, 네 번째는 상징화symbolization,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이차적 가공secondary elaboration이다. 이 중 프로이트가 중시하고 있는 것은 ‘응축’과 ‘전위’라는 메커니즘이다.
-‘ 연극화’는 정확히 말해 꿈의 내용이 시각적 이미지로 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4. 꿈-작업이 가르쳐주는 정신의 구조와 기능

◇ 우리는 우리가 깨어난 후 꿈으로 기억하는 것이 실제 꿈의 과정이 아니라 그 배후에 꿈의 과정이 감추어져 있는 외형일 뿐이라고 가정함으로써, 꿈의 이해에 이르는 길에 접어들었다. 이것이 우리가 행했던 발현된 꿈-내용과 잠재적인 꿈-사고의 구별이다. 후자로부터 전자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우리는 꿈-작업이라 부른다.
우리는 꿈-작업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한 돋보이는 사례에서 어떻게 이드로부터 오는 무의식적 자료, 즉 원천적이고 억압된 것이 자아에 밀려들어오고 전의식적으로 되며 자아의 저항에 의해 우리가 꿈의 왜곡이라고 알고 있는 변화를 겪게 되는지 알게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꿈의 성격이란 없을 것이다. 꿈-형성에는 두 가지 계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의 확인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한편으로 깨어 있을 때 억제되었던 본능적 충동(무의식적 소원)이 잠잘 때 강해져서 자아에서 관철된다. 아니면 깨어있을 때의 생활에서 남겨진 욕구, 즉 전의식적인 사고가 그에 따르는 모든 갈등적 충동과 함께 잠잘 때 무의식적 요소에 의해 강화된다. 따라서 꿈은 이드 아니면 자아로부터 온다. 두 경우 꿈-형성의 기제는 동일하며, 역동적 조건도 동일하다. 자아는 순간적으로 기능을 중당하고 이전 상태로 되돌아감으로써 자신이 이드로부터 나중에 발생한 것임을 입증한다.「정신분석학 개요」

- 꿈을 분석하면서, 프로이트는 인간 의식 내면 속에 복잡한 구조와 기능이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재구성하려고 한다. 우리가 명료하게 아는 것은 ‘의식’이란 영역이다.
- 프로이트는 ‘의식’ 영역 이외에 ‘무의식’의 영역과 ‘전의식’의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 ‘무의식’을 담당하는 조직을 프로이트는 ‘이드’라고 명명하고, 반면 ‘전의식’을 담당하는 조직을 ‘자아’라고 명명한다.
- 말년의 중요한 이론적 저작, 「정신분석학 개요」(1940)에서 꿈은 두 가지 계기로부터 가능하다는 최종적 해명이 이루어진다. 첫 번째 계기는 본능적 충동으로부터 온다. 깨어있을 때 억제된 본능적 충동이 자아가 약해지는 수면 상태에 출현하는 것이 바로 꿈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계기는 전의식적 사고가 자아가 약해질 때 출현한 것이 바로 꿈이라는 것이다.

5. 일상생활에서의 실수 행위

◇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은 자발적으로 제물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물건을 잃어버리는 행위는 또한 거부나 자기 징벌의 목적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요컨대 물건을 잃어버림으로써 자기 곁에 사라지게 하려는 의도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주의도 역시 자기 자신을 거부해야 하는 소망을 실현하는 데 흔히 사용됩니다. 그것은 실수 행위 자체를 다행스런 사건으로 위장하려는 의도입니다. 「정신분석 강의」

- 실수 행위는 어떤 억압된 소망의 실현이다.
-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에서 다루어진 실수 행위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언어의 망각, 잘못 말하기, 잘못 읽기, 잘못 쓰기, 인상의 망각, 잘못 잡기, 착오 등이다.





제4강 섹슈얼러티에 대한 성찰

1. 인간은 탄생에서부터 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

◇ 정신분석학의 중요한 발견은 다음과 같다. ⒜ 성생활은 사춘기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출생하자마자 나타나는 평범한 현상들로부터 시작한다. ⒝ ‘성(sexual)’과 ‘생식(genital)’은 서로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성은 생식보다 더 넓은 개념이며, 생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여러 가지 행위들을 포함한다. ⒞ 성생활에는 신체 기관을 이용하여 쾌락을 얻는 기능이 포함된다. 그 기능은 결과적으로 번식의 목적에 부응하게 된다. 그러나 양자는 서로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여기서 주된 관심사는 당연히 세 가지 사실 가운데 가장 뜻밖인 것인 첫 번째 사실에 집중된다.「정신분석학 개요」(1940)

- 정신분석학이 처음 등장했을 때, 주로 조롱받은 이유는 프로이트가 갓난아이에게도 성욕이 있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 프로이트는 성적인 욕망은 성기적 결합이나 번식 행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2. 유아 성생활의 비밀

◇ 최초의 성감대이자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마음 속에 리비도적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신체 기관은 입이다. 맨 먼저 모든 심리적 활동은 바로 입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집중된다. 물론 그 충족은 영양 섭취를 통한 자기 보존의 목적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기서 생리학과 심리학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아기가 고집스럽게 뭔가를 입으로 빨려고 하는 버릇은 한편으로는 영양의 섭취에서 비롯되고 그것에 의해 자극되는 행동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섭취와 별도로 쾌락을 얻으려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성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구순기에 이미 치아의 등장과 함께 가학적 충동이 분리되어 나타난다.

공격과 배설 기능에 충족을 찾으므로 우리가 가학적 항문기라 부르는 두 번째 시기에 이는 더 큰 범위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공격적 충동을 리비도에 포함시킬 수 있는 정당화의 근거는, 사디즘이 리비도적 충동과 파괴적 충동의 본능적 혼합물이며 이 혼합이 이때부터 지속된다는 견해에 있다. 세 번째 시기는 소위 남근기인데, 이 시기는 말하자면 성생활의 선구자로서 이미 성생활의 최종 형태와 유사하다. 여기서 양성의 성기가 아니라 남성의 성기만이 어떤 역할을 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 남근기와 함께, 이 시기 동안 유아의 성욕은 그 절정에 달했다가 가라앉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소년과 소녀는 서로 다른 운명을 걸어간다. 이 둘은 그들의 지적 활동을 성 연구에 바치기 시작하고 남근이 모든 사람에게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제 양성의 길은 갈라지게 된다. 소년은 오이디푸스 시기에 들어서게 된다. 소년은 남근을 자위하면서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남근의 그 어떤 성적 활동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이는 그가 거세 위협을 느끼는 것과 여성에는 남근이 없다는 것을 본 것이 결합되어 그의 생애에서 가장 큰 외상을 입게 되기까지 지속되고, 이 외상에 의해 그 모든 후속 결과를 갖는 잠재기가 시작된다. 소녀는 소년과 똑같이 하려는 시도가 수포로 돌아간 후 남근이 없다는 것 혹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음핵의 열등함을 인식하게 되고, 이는 성격 형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경쟁에서의 최초의 실망의 결과 소녀는 종종 성생활 일반에서 멀어지게 된다.「정신분석학 개요」(1940)

- 프로이트는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신체 기관을 중심으로 유아의 성생활의 진행 과정을 설명한다.
- 첫 번째는 입으로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시기[=구순기]이다.
- 유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시기로 진입한다. 그것은 바로 항문에 의해 쾌감을 느끼는 시기[=항문기]이다.
- 유아는 항문기를 거쳐서 드디어 남근기에 이르게 된다.

- 프로이트에 따르면 사내아이는 긍정적으로 남근에 의한 쾌감을 유지하나, 여자아이는 자신에게 남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근을 통해서 쾌감을 느낀 사내아이는 어머니에게 남근이 없다는 것, 그리고 어머니가 남근을 원한다고 상상한다. 이어서 사내아이는 자신의 남근이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라고 상상한다.

- 이로부터 사내아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사내아이는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아버지와의 경쟁 관계에 빠지고, 결국 거세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유아의 성생활은 표면에서 사라지고, 뒷날 사춘기의 성생활이 시작할 때까지 유아 속에 잠재하게 된다.


3. 성적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힘, 리비도!

◇ 인간과 동물이 성적 욕구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은 생물학에서 배고픔, 즉 식욕과 관련해서 ‘성적 본능’이라는 가설로 표현된다. 일상 언어에서는 성적 본능에서의 ‘배고픔’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지만, 정신분석에서는 그에 맞는 ‘리비도(libido)’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일반 대중들은 성적 본능의 특질과 특성에 대하여 나름대로 상당히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적 본능은 유년기에는 존재하지 않고, 성숙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춘기에 시작되고, 이성이 내보이는 매력에 불가항력적으로 이끌릴 때 나타난다는 것이다. 반면 그 목적은 성적 결합, 또는 성적 결합을 지향하면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런 견해가 실제 상황의 진실된 모습이 아니라 그릇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 이 대목과 관련해서 나는 두 가지 전문적인 용어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성적 대상(sexualobjekt)’으로서의 성적 매력으로 일으키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적 목적(sexualziel)’으로서 성적 대상을 향한 본능적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과학적으로 면밀히 검토해보면 많은 일탈 행위가 성적 대상과 성적 목적이라는 양측면과 관련되어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성적 이상」(1905)

- 프로이트는 성적 쾌감의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리비도(libido)’라고 정의한다.
- 프로이트의 리비도는 기본적으로 어떤 결여로서 사유되고 있다는 점이다.
- 성인 남녀의 성적인 쾌락에는 유아 시기의 성생활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셈이다.

- 성욕도착, 그리고 수치심과 혐오감

◇ 정상적인 성적 목적은 성교라는 행위를 통해 생식기가 결합되는 것으로 간주되며, 그 행위는 성적인 긴장을 완화시키고 성본능을 일시적으로 해소시킨다. 이것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과 유사한 만족감이다. 그러나 아주 정상적인 성행위 과정에서도 우리는, 만일 발전된다면, 성욕도착이라고 하는 일탈행위로 전이될 조짐을 찾아낼 수 있다.

왜냐하면 만지거나 보는 행위와 같은, 성적 대상에 대한 중간적인 관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들은 성교에 이르는 도상에 놓여 있고, 예비적인 성적 목적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만지거나 보는 행위는 한편으로는 즐거움을 수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흥분을 고조시키는데, 그 흥분은 최종적인 성적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 성욕도착은 해부학적인 의미로 성적인 결합을 위해 마련된 신체 부분들의 범위를 넘는 확장된 성행위, 또는 정상적으로는 최종적인 성적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신속히 지나가야 할 성적 대상에 대한 중간 단계에서 지체하는 성행위이다.

(…) 성욕도착을 연구한 결과, 우리는 성본능이 저항력으로 작용하는 정신적인 힘들과 싸워야 하며, 그 힘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수치심과 역겨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힘은 본능이 정상이라고 간주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되는데, 만일 어느 개인의 성본능이 전성기에 이르기 전에 발달된다면, 성본능의 발달 과정을 결정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수치심이나 역겨움일 것이다.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성적 이상」(1905)

- 프로이트는 수치심과 혐오감의 감정으로부터, 다시 말해 신체와 관련된 성적 쾌락에 대한 어떤 메타적 감정으로부터, 자아 탄생의 계기를 엿보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프로이트가 이야기했던 두 가지 원리, 즉 쾌락원리(pleasure principle)와 현실원리(reality principle)를 떠올리게 된다.



제5강 마음의 내적 구조

1. 쾌락원리로부터 현실원리로의 이행

◇ 정신분석에 토대를 둔 심리학에서 우리가 흔히 출발점으로 택하는 것은 분석을 통해 그 독특한 특성이 알려지는 무의식das Unbewußte의 정신 과정이다. 우리는 이 무의식의 정신 과정을 더욱 오래된, 원초적인 1차 과정으로 간주한다. 이는 무의식의 정신 과정이, 그것만이 유일한 종류의 정신 과정이었던 정신 발전 단계의 잔존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1차 과정을 지배하는 규제 원리는 비교적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바로 쾌락-불쾌의 원리, 또는 더 간단히 ‘쾌락원리Lustprinzip=pleasure principle’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원초적인 제1차의 정신 과정들은 쾌락을 추구한다. 따라서 불쾌를 조장하는 사건이 있다면 자연히 정신 활동은 그 사건으로부터 물러서게 된다. (바로 억압 과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밤에 꾸는 꿈, 그리고 우리가 깨어 있을 때 괴로움을 주는 여러 인상들에서 벗어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점, 이런 것들이 바로 쾌락원리 때문에 생긴 결과이자 그 원리가 어느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는지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 내적 욕구의 요구가 심리적 안정을 해치게 될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소망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날 우리가 매일 밤 꿈-사고를 통해 겪는 것과 같은 환각적인 방식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기대했던 만족을 얻어내지 못하고 실망을 경험하게 되면서 환각을 통해 만족을 얻으려는 시도를 포기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정신 기관은 환각을 통한 만족 대신에 외부 세계에서 현실적인 변화를 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해서 정신 기능의 새로운 원리가 도입되는 것이다. 정신에 제시되는 것이 유쾌한 것이 못 되지만 설혹 그것이 불쾌한 것이라도 현실성은 있는 그런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현실원리Realitatsprinzip=reality principle’가 설정되는 단계는 분명 아주 중대한 단계인 것이다.「정신적 기능의 두 가지 원칙」(1911)

- 마음에 대한 프로이트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쾌락원리’와 ‘현실원리’라고 할 수 있다.
- ‘쾌락원리’는 글자 그대로 우리의 일차적 정신 과정이 불쾌를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현실원리’는 현실의 삶에서 우리가 직접적인 쾌락을 추구했다가는 더 큰 불쾌를 얻을 수 있다는 의식을 가진다는 사실로부터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 ‘현실원리’가 2차적 정신 과정이라면, ‘쾌락원리’는 1차적 정신 과정이다.

- 의식과 사유의 계보학

◇ 외부 현실이 갖는 중요성이 증가할수록 외부세계를 지향하는 감각기관과 그 기관에 관련된 ‘의식’의 중요성 또한 증가한다. 의식은 지금까지 그것의 주된 관심 대상이었던 쾌락과 불쾌의 특질들뿐만 아니라 감각적 특질들까지 파악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만일 어떤 긴급한 내적 욕구가 일어나더라도 외부세계의 자료에 낯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외부세계를 정기적으로 탐색하는 특수한 기능이 새롭게 시작된 셈이다. 이것이 바로 ‘주의력’ 기능이다. 말하자면 의식의 이 기능은 의식이 감각 인상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감각 인상이 나타날 곳을 찾아가 중간에서 맞이하는 기능인 것이다. 이와 동시에 아마 ‘기록’ 체계도 도입되었을 것이다.

이 체계의 임무는 정기적인 의식 활동의 결과를 기록해두는 것으로, 우리가 ‘기억’이라 부르는 것의 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새로 출현한 표상들 가운데 일부를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리비도 집중에서 제외시키는 억압의 경우, 그 억압의 자리에는 ‘공정한 판단’이 자리 잡는다. 그 판단과정은 주어진 표상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즉 그 표상이 현실에 부합되는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판별해야 한다.

그와 같은 판단은 현실에 관한 기억 흔적과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운동을 통한 발산에도 새로운 기능이 할당된다. 운동을 통한 발산은 쾌락원리의 지배 하에서 정신 기관에 가해지는 자극의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말하자면 신경자극을 신체 내부에 보냄으로써(이것은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동작이 얼굴 표정, 혹은 감정 표현으로 이어진다) 자극의 증가를 낮추는 것이 운동을 통한 발산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운동을 통한 발산이 현실의 적절한 변화에 이용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운동을 통한 발산은 ‘행동’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점차 운동을 통한 발산(행동)에 규제를 가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 역할은 표상의 재현을 통해 전개되는 ‘사고’ 과정이 담당하게 된다. 정신 기관으로 하여금 자극의 증가로 생기는 긴장을 견뎌 내게 하고 동시에 운동을 통한 발산을 연기토록 하게 만드는 기능이 이 사고 과정에 부여된다.「정신적 기능의 두 가지 원칙」(1911)

- 인간의 내적 욕구는 쾌락을 추구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쾌락에 대한 추구는 외적인 현실에 의해 방해되거나 지연될 수밖에 없다.

- 주의력은 프로이트의 말대로 “만일 어떤 긴급한 내적 욕구가 일어나더라도 외부세계의 자료에 낯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외부세계를 정기적으로 탐색하는 특수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2. 인간의 정신활동을 설명하는 두 가지 원리

◇ 쾌락-자아가 ‘소망’할 뿐이며, 쾌락 생산에만 매진하고 불쾌는 회피하려고 노력한다면 마찬가지로 현실-자아는 ‘유용한’ 것만을 추구하고 손상을 당하지 않으려고 스스로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사실은 쾌락원리를 현실원리로 대체한다 해서 쾌락원리를 완전히 폐기해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현실원리의 대체가 쾌락원리를 보호한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가 불확실한 어떤 순간적인 쾌락은 포기되지만 그것은 새로운 길을 통해서 나중에 더욱 확실한 쾌락을 보장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쾌락원리를 현실원리로 대체하는 그와 같은 일은 정신 내부에 너무도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종교적 신화에도 반영되어 나타난다. 사실 세속적 쾌락을 포기-그것이 자발적인 것이든 강요에 의한 것이든-하면 그 대가로 내세에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종교적 교리는 바로 그런 정신적 혁명을 신화적으로 투사한 것이나 같다.

(…) 우리는 지극히 당연하게 교육은 쾌락원리를 극복하고 그것을 현실원리로 대체하게끔 하는 동기(자극)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교육은 자아 발전 과정에 도움을 준다. 그런 목적을 위해 교육은 교육자들이 주는 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을 한껏 활용한다. (…) 예술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쾌락원리와 현실원리, 이 두 원리를 화해시킨다. 예술가란 본디 처음부터 스스로가 현실이 요구한 본능적 만족의 포기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현실에 등을 돌린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환상적인 삶 속에서 자신의 야심에 가득 찬 소망과 성애적 소망을 마음껏 펼쳐 보이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적 기능의 두 가지 원칙」(1911)

- ‘현실원리’가 기본적으로 ‘현실[=외부=타자]에 의해 매개된 쾌락원리’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현실 원리를 따르는 것은 그것이 순진하게 쾌락원리를 따르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쾌감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프로이트는 현실원리와 쾌락원리라는 두 가지 원리를 통해서 종교, 교육, 그리고 예술에 대해 설명한다.
- 프로이트에게 종교는 미래의 쾌락을 위해서 현재의 쾌락을 포기하는 현실원리를 가장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정신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 프로이트에게 있어 교육은 상장이나 성적표, 혹은 미래의 진학을 미끼로 교육자들이 학생들의 쾌락원리를 현실원리로 바꾸기 위한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
- 프로이트에게 예술가는 “환상적인 삶 속에서 자신의 야심에 가득 찬 소망과 성애적 소망을 마음껏 펼쳐 보이고자 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제6강 마음의 위상학1 : 이드로부터 자아로



1. 이드

이드(Id)’는 영국의 정신분석가들이 ‘das Es’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영어가 없었기 때문에 라틴어를 차용하여 쓰게 된 말이다. 사실 ‘das Es’를 영어로 직접 옮기면, ‘the It’이라고 해야 된다. 그러나 이것은 영어 어법에는 맞지 않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는 ‘이드’라는 영어표현 대신에 ‘das Es’를 ‘거시기’나 ‘그것’으로 번역하곤 한다.

- 스피노자: '코나투스',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힘, 스피노자가 정의한 인간의 본질. 자기 삶을 유지하려는 힘이 강한 사람. 즉 코나투스가 강한 사람이 있고 약한 사람도 있다. /코나투스가 증가하면 기쁨에 가까워지고 그렇지 아니하면 슬픔에 가까워짐. 프로이트 또한 스피노자와 가깝다. 



2. 이드와 자아와의 관계

◇ 우리의 두 가정은 우리 지식의 이 종착점 내지는 출발점에서 시작된다. 첫째 가정은 위치를 정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가정에 따르면, 정신생활은 다수의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고 공간적 연장의 속성을 갖는 한 기관의 기능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기관을 망원경이나 현미경과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일관되게 구축하는 것은 이미 비슷한 것이 시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우리는 인간 존재의 개별적 발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 정신적 장치를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정신적 지역 또는 기관의 가장 오래된 것을 ‘이드das Es=Id’라 부른다. 그 내용은 유전되어 출생 때부터 가지고 있고, 구조적으로 확정된 모두이다. 따라서 그 내용은 무엇보다도 신체 조직에 기인하는 본능인데, 이 본능은 그 형태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는 방식으로 이드에서 정신적으로 표현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실재 외부 세계의 영향 하에서 이드의 한 부분이 특별히 발전한다. 원래 자극의 수용을 위한 기관들과 자극 보호를 위한 장치를 가진 외피층이었던 것이 이드와 외부 세계를 매개하는 하나의 특수한 조직으로 형성된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생활 중 이 영역에 자아‘das Ich=ego’라는 이름을 붙인다. 자아의 중요한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자아는 감각 지각과 근육 활동 간의 미리 형성된 관계로 인해 자의적인 운동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 보존의 과제를 지니고 있으며, 외부를 향해서는 자극을 배우고, 그에 대한 경험을 (기억 속에) 저장하고, 과도한 자극을 (도피를 통해) 피하고, 적당한 자극에 (적응에 의해) 대응하고, 마침내 외부 세계를 합목적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도록 변화시키는 것을 배움으로써 이 과제를 수행한다. 내부를 향해서는 본능의 욕구들에 대한 지배력을 획득함으로써 이드에 대립하여 이 요구들의 충족이 허용될 수 있는가의 여부를 결정하고, 외부 세계에서의 유리한 시간과 환경으로 이 충족을 지연시키거나 그것의 흥분을 억제함으로써 이 과제를 수행한다.

자아의 활동은 자아 속에 존재하거나 자아 속으로 들어온 자극의 긴장에 대한 주목에 의해 인도된다. 일반적으로 이 긴장의 증가가 불쾌로, 그것의 감소가 쾌락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쾌락과 불쾌로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 자극 긴장의 절대적 수준이 아니라 그것의 변화 리듬에서의 어떤 감정일 것이다. 자아는 쾌락을 추구하고 불쾌를 피하려 한다. 불쾌 증가가 기대되고 예견되는 경우 자아는 ‘불안 신호’로 대답한다. 그것의 동인이 외부에서 오든 내부에서 오든 그것을 ‘위험’이라 한다.「정신분석학 개요」(1940)

- 쾌락원리와 현실원리에 대한 숙고를 통해서 프로이트는 마침내 마음의 내적 구조의 비밀을 엿보게 된다.
- 그것은 바로 이드-자아-초자아로 구성된 마음의 위상학(topology)으로 정리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이드와 자아의 관계이다.

- 이드가 ‘쾌락원리’에 따르는 정신의 장소라면, 자아는 ‘현실원리’를 상징하는 정신의 장소이다.
- 이드가 흔히 생각하듯이 생물적인 본능이나 성적인 욕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어떤 지역을 가리킨다.
- 이드라는 장소를 통해서 생물적인 본능이 정신적으로 표현된다.


3. 자아

-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자아란 내적인 욕망과 외부의 세계를 매개하는 정신의 어떤 지역을 말한다.
- 자아는 자신 속으로 밀려들어오는 자극의 긴장에 주목하는 활동을 한다.


4. 자아를 침입하는 두 가지 자극

- 자아에 침입하는 자극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두 가지 종류의 것이 있다. 하나는 내적인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외적인 자극이다.
- 자아는 긴장의 증가를 불쾌로, 반대로 긴장의 감소를 쾌락으로 경험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자아의 쾌락과 불쾌는 ‘쾌락원리’라기보다는 ‘현실원리’라는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제7강 마음의 위상학 2: 이드, 자아, 그리고 초자아





1. 자아에게는 대립될 수 있는 세 가지 자극

◇ 인간 존재로 성장해 가는 아이가 부모에 의존하여 사는 긴 유아기의 침전물로 자아 속에서는 하나의 특별한 기관이 형성되는 데, 여기서 부모의 영향은 지속된다. 이 기관은 ‘초자아das Uber-Ich=superego’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 초자아가 자아와 구별되거나 자아에 대립하는 한에서, 그것은 자아가 고려할 수밖에 없는 제3의 힘이다. 자아의 행위는 그것이 자아, 초자아 및 실재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때, 따라서 이들의 요구를 서로 조화시킬 수 있을 때 올바른 것이다. 자아와 초자아 사이 관계의 세부 사항은 보통 아이의 부모에 대한 관계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이해될 수 있다. 부모의 영향으로 작용하는 것은 부모의 개인적 존재만이 아니다. 부모에 의해 이어지는 가족, 인종 및 민족 전통의 영향과 부모가 대변하는 각각의 사회적 환경의 요구도 작용한다.

마찬가지로 초자아는 개인 발달 과정에서 나중에 나타나는 전승자와 부모의 대체 인물 편에서 오는 기여도 받아들이는데, 그것은 교육자, 공공의 모범, 사회에서 숭배되는 이상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드와 초자아가 근본적으로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일치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과거의 영향들을 대변하는 바, 이드는 유전된 과거의 영향을, 초자아는 본질적으로 다른 이로부터 넘겨받은 과거의 영향을 대변한다. 반면 자아는 스스로 체험한 것, 따라서 우연적이고 현재적인 것에 의해 주로 규정된다.「정신분석학 개요」(1940)

- 하나는 이드라는 장소에서 정신적으로 표현되는 내적인 욕망
- 둘째는 외부 세계의 현재 자극
- 마지막 셋째는 기억의 지평에서 존재하는 과거의 압도적인 자극에 대한 흔적이다. 이 마지막의 자극은 현재라는 시간 지평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정신적인 장소로서 ‘초자아’로 존재할 뿐이다.


2. 프로이트는 이드-자아-초자아로 구성된 마음의 위상학을 완성한다.

- 이드와 초자아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것이다. 전자가 인간의 신체로부터 기원하는 본능의 힘을 상징한다면, 후자는 인간의 사회성으로부터 기원하는 문명의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 자아와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이드와 초자아는 ‘과거’라는 시간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드가 유전된 과거의 영향을 나타낸다면, 초자아는 역사·문화적 과거의 영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 프로이트에 따르면 오직 자아만이 현재라는 시간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현재 외부 세계의 자극이나 초자아는 모두 외부로부터, 즉 타자로부터 유래한다는 점이다.



제8강 쾌락원리를 넘어서[or 죽음의 본능]-정신분석학 강의4

1. 외상적 신경증과 아이들의 놀이

◇ 외상성 신경증(traumatic neurosis)에서 나타나는 꿈은 환자를 사건의 현장, 즉 환자가 또 다른 경악 속에서 잠을 깨게 만드는 그 현장 속으로 반복해서 데리고 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 놀이 속에서 어린아이들은 실제 생활에서 그들에게 큰 인상을 끼쳤던 무엇이든 반복하며, 이런 반복을 통해 그 인상의 강도를 소산시키고 자신들이 그 상황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들의 모든 놀이는 그들을 항상 지배하고 있는 욕망, 즉 어른이 되어서 어른들이 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것이 분명하다. 경험의 불쾌한 성격이 반드시 놀이에 부적합한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만약 의사가 어린아이의 목을 검진하거나 아이에게 작은 수술이라도 하게 되면 이 무서운 경험이 그 아이의 다음 놀이 주제가 되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과 관련하여 또 다른 출처에서 오는 쾌락의 산물이 있다는 사실을 간관해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가 경험의 수동성에서 놀이의 능동성의 상태로 변화해 감에 따라 그는 불유쾌한 경험을 그의 놀이 친구로 전이시킨다. 그리고 그는 이런 방식으로 대체된 인물에 복수하는 것이다.「쾌락원리를 넘어서」(1920)

- 외상적 신경증 환자는 자신에게 외상을 주었던 그 사건을 꿈에서 반복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이다.
- 프로이트에 따르면 쾌락은 흥분의 양이 감소하는 것에, 그리고 불쾌는 흥분의 양이 증가하는 것에 해당하는 상태이다.

- 아이들은 자신들이 조우한 사건들, 그것이 유쾌한 것이든 불쾌한 것이든지 간에, 놀이를 통해서 반복하려고 한다. 프로이트는 불쾌한 인상도 피하지 않고 놀이로 반복하려는 아이들의 모습에 주목한다.

◇ 어떻게 해서 억압된 것의 위력의 표시인 반복 강박이 쾌락원리와 연결되어 있는가? 반복 강박을 통해서 다시 경험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자아에게 불쾌를 유발하는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경험은 억압된 본능 충동의 행위를 겉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이미 고려했던 종류의 불쾌이고 쾌락원리에 모순되지 않는다. 즉 한 조직에 대한 불쾌이면서 동시에 다른 조직에는 만족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새롭고 주목할 만한 사실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것은 반복 강박이 쾌락의 가능성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는 과거의 경험, 그리고 억압된 본능 충동에조차도 만족을 가져올 수 없었던 과거의 경험을 회상해낸다는 것이다.

(…) 반복 강박-쾌락원리보다 더 원시적이고, 더 기초적이며 더 본능적인 것으로 보이는 그 무엇-의 가설을 정당화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것들이 충분하게 설명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반복 강박이 ‘과연’ 마음 속에 작동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았으면 좋겠고, 그것이 어떤 기능을 갖는지, 어떤 상황에서 반복 강박이 나타나고 지금까지 정신 생활의 흥분 과정을 지배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여겼던 쾌락원리와는 어떤 관계를 갖는지 알았으면 좋겠다.「쾌락원리를 넘어서」(1920)2. 반복 강박으로부터 죽음 본능으로.

- 프로이트는 과학자적인 태도를 보인다. 외상적 신경증 환자에게 드러나는 반복 강박에 대해 그는 철저하게 숙고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억압된 소망의 환각적인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반복적 놀이를 통한 끔찍한 사건을 통제 할 수 있다고 생각 함. 고통스러운 것을 반복 함으로써 불쾌한 느낌을 불쾌하지 않은 느낌으로 전환. 이것을 쾌락원리에 입각하여 풀어냄. 


- 쾌락원리: 인간은 불쾌->쾌감을 원한다. 

외적 자극에 대한 (자아 입장에서의 무의식.이드.외부세계에서 오는 것) 근본 양

- 쾌락: 흥분의 감소

- 불쾌: 흥분의 증가

-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당시의 상황이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꿈이란 프로이트에게는 억압된 욕망의 실현이었으나, 외상적 신경증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 꿈의 강도가 전혀 줄지 않았다. 그래서 외상적 신경증에서 프로이트는 죽음의 본능을 본다. 사건을 통해 자기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죽음을 쾌락의 원리로 봄. 


- 죽음을 본능으로 본다는 관점이 신선하다. 이 삶에 죽음이 있기에, 이별, 끝이 있기에 우리는 더욱 의미부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저 밑바닥으로부터 죽음의 본능을 가지고 있을 수도 모르겠다. 자기 자신을 파괴하려는 본능, 욕구에 대한 그들의 배경이 너무나 슬프지만, 인간의 파괴 본능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모든 것은 해체를 향하고, 우리의 육체 또한 그렇다면 이 본능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지 않나? 우리 안에는 파괴와 창조가 함께 있는 것인가.. 



3. 본능의 두 가지 경향, 삶 본능과 죽음 본능.

◇ 본능적 삶의 두드러진 이원론적 견해를 고려해 보기 위해 잠시 멈추어보자. 헤링E. Herring의 이론에 따르면 두 종류의 과정이 항상 살아 있는 물질 속에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데, 하나는 건설적이거나 동화적이고 다른 하나는 파괴적이거나 이화적이다.

생명 과정에 의해서 취해진 이런 두 가지 방향 속에서 우리는 생명 본능과 죽음 본능이라는 두 개의 본능 충동의 행위를 읽어낼 수 있을까? 어찌되었든 우리가 눈감고 있을 수 없는 다른 것들이 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쇼펜하우어 철학의 항구 속으로 배를 몰아 온 것이다.

그에게 있어 죽음이란 ‘진정한 결과이자 연장된 삶의 목표’인 반면, 성적 본능은 삶에 대한 의지의 구체적 표현이다. (…) 개체의 생명 과정은 내적인 이유로 해서 화학적 긴장의 소멸, 다시 말해서 죽음으로 향하고, 반면에 다른 개체의 살아 있는 물질과의 결합은 그러한 긴장을 고조시켜 이른바 신성한 ‘생명 고취적 차이’를 도출해낸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와 관련하여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최적 조건이 존재할 것임에 틀림없다. 정신 생활 및 신경 생활 전반의 지배적인 경향은 자극 때문에 생긴 내적 긴장을 줄이거나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 혹은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바라 로우Barbara Low의 용어를 빌리자면 ‘열반원리Nirvana-Principle’이다.) 이런 경향은 쾌락원리 속에서 발견된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죽음 본능의 존재를 믿는 가장 강력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쾌락원리를 넘어서」(1920)

- 프로이트는 본능에는 상이하며, 심지어는 대립적이기까지 한 두가지 종류의 것이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가설을 제안하게 된다.
- 하나가 건설적이고 동화적인 본능, 즉 에로스적인 본능이라면, 다른 하나는 파괴적이고 이화적인 본능, 즉 타나토스적인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전자를 “생명 본능”으로, 후자를 “죽음 본능”이라고 이야기한다.

- 죽음 본능이란 가설을 제안하면서 프로이트는 이 본능이 쾌락원리와 부합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 쾌락원리에 따르면 쾌락이 기본적으로 자극에 대한 흥분의 양이 감소할 때 가능한 것이라면, 불쾌는 자극에 대한 흥분의 양이 증가할 때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생명체가 죽는다는 것은 최고의 쾌락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극에 대해 전혀 흥분하지 않는 상태가 바로 죽음이라면, 죽음이란 역설적으로 흥분의 양 자체가 제로가 되어버리는 쾌락의 지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열반’을 뜻하는 글자 ‘Nirvana’는 불(vana)이 꺼진(nir)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생명이 완전히 소멸하면 우리는 일체의 불쾌가 무의미해지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 쾌락원리: 불쾌를 없애려는 것-> 본능1의 원리

- 현실원리: 불쾌와 타협해주는 것. 나중에 쾌락을 실현해야지 -> 자아의 원리

- 니르바나, 열반원리: 내적긴장의 와해, 소멸-> 본능 2의 원리



4. 사디즘, 죽음 본능의 한 가지 사례

◇ 바로 처음부터 우리는 성적 본능 속에서 사디즘적 구성 요소의 존재를 인식했다. 알다시피 사디즘적 요소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고 도착의 형태로 한 사람의 전체 성적 행위를 지배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내가 ‘전성기기의 조직’이라고 이름 붙인 것 속에서도 지배적인 구성 본능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대상을 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디즘적 본능이 어떻게 생명의 보존자, 에로스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사디즘은, 사실상 자기애적 리비도의 영향에 의해 자아에서 강제로 분리되어 결국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죽음 본능이라고 생각해도 그럴듯하지 않을까? 그것은 이제 성적 기능의 봉사를 시작한다. 리비도 조직의 구순기 동안 대상에 대해 성적 지배를 달성하는 행위는 대상의 파괴 행위와 일치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성기기가 우위를 차지하는 단계에 이르면 사디즘적 본능은 재생을 목적으로 성행위를 수행하기에 필요한 정도로 성적 대상을 압도하는 기능을 부여받는다.

자아에서 강압적으로 떨어져 나온 사디즘은 성적 본능의 리비도적 성분을 지향하며, 이 성분은 대상을 향해 그 뒤를 따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의 사디즘이 조금도 완화되지 않거나 혼합되지 않는 곳에서는 언제나 성적인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과 증오의 양가 감정을 발견하게 된다. 「쾌락원리를 넘어서」(1920)

- 프로이트는 죽음 본능, 즉 파괴하고 이완시키는 죽음 본능의 사례로 사디즘(Sadism)을 이야기한다.
- 사디즘은 상대방에 대한 폭력이나 파괴 행위를 통해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도착적 성행위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 구순기의 단계에서 아이들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강하게 무는 경우가 있다. 프로이트는 이 행위가 성기기에 드러나면 그것이 바로 사디즘이라고 생각한다.

- 사디즘에 사로잡힌 사람은 관계나 심지어 대상을 파괴하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
- 프로이트에 따르면 죽음 본능이 성적인 대상으로 향할 때 그것은 사디즘이라는 도착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 죽음 본능이 성적인 대상이 아니라 자아에게로 향할 때 그것은 마조히즘(Masochism)이라는 도착적 형태로 드러난다. 그것은 누군가가 자신을 파괴하려고 할 때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도착된 성행위를 지칭하는 것이다.


5. 에로스와 파괴본능

◇ 이드의 힘은 개별 존재의 본래적인 생명의 의도를 표현한다. 이 힘이 본질은 이드가 가지고 있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있다. 생명을 유지하고 위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외도는 이드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외부세계를 고려하여 가장 유리하고 가장 위험이 없는 종류의 충족을 찾아내야 하는 자아의 과제이다. 초자아가 새로운 욕구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초자아의 주된 업무는 충족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드의 욕구 긴장의 배후에 있다고 가정되는 힘을 본능Trieb이라 부른다.

이 힘은 정신생활에 대한 신체적 요구를 대변한다. 그것은 모든 활동의 최종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성격을 갖는다. 어떤 존재가 도달한 모든 상태로부터 이 상태를 떠나자마자 그것을 복구하려는 노력이 일어난다. 따라서 무수한 수의 본능을 구별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일상적인 실천에서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다양한 본능들은 몇몇 소수의 기본 본능들로 환원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우리의 경험에 따르면, 본능은 그 목적을 (전위에 의해) 변화시킬 수 있으며, 어떤 한 본능의 에너지가 다른 본능의 에너지로 이전됨으로써 본능들은 서로 대체될 수 있다.

이 후자의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잘 이해되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한참 동안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두 가지 기본 본능, 즉 에로스와 파괴본능을 가정하기로 결정했다. 「정신분석학 개요」(1940)

- 육체로부터 기원하는 우리의 욕망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한다.
- 자아는 현실원리에 따라 이드가 추구하고자 하는 쾌락을 현실적으로 지연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 프로이트는 이드로부터 다양한 욕구들이 가능하지만, 그는 그 욕구들을 두 가지 본능으로 수렴시킨다. 하나는 생명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에로스이며, 다른 하나는 죽음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파괴 본능이다.
- 죽음 본능이 쾌락원리를 따른다는 프로이트의 지적이 과연 타당한 것이냐는 것인가?


- 엔트로피를 한 개체의 욕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생명이 나아가는 방향의 한계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 사회(공동체)가 개체에게 금지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중 하나가 분명히 죽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 자살의 목적은 행복하기 위해. 그러나 사회는 죽음을 개체가 결정하지 못하게 함.  그러나 프로이트는 자살을 본능으로 이야기 함. 목적론(결과를 원인속에 집어넣기)적으로의 접근일 수 있기에 위험할 수도 있음. 어짜피 죽는 것이기 떄문에 우리의 목적이 죽음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자살하려는 이가 자살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는가, 행복이 목적이었는가? 순수히 죽음만이 목적인 삶이 가능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