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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렁 이 의 길/인 권 활 동 기 록 - 1 2 ~ 2 3 년

회의가 끝나고

by 두치고 2013. 8. 8.

회의가 끝나고,

국장님과 은지씨가 다른 방으로 들어가 했을 말이 뻔해서.

갑자기 열불이 올라 글을 쓰기 시작했음.. 

 


신뢰를 기반으로 한 담당자들의 선택에 맡기는 것. 그 신뢰는 객관적 판단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 인데, 그것이 예를들어 내가 여자 이기 때문에 여자의 케이스에 더 끌리게 되는 것. 그렇다면 C변호사 넘겼을 때 복불복/운에 맡겨지는 것이랑 무엇이 다른가?


엄연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 사실) 난민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중산층 이상일 것이며/그곳에서는 상대적으로 권력 또는 지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이들 또는 교육을 받은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것이다. . 정말 누구든? 보호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행할 수 있는 것인가? 가난하거나 그 사회에서 사회적 지위가 인정되지 않는사람들의 경우 난민캠프로 갈 가능성이 더 많겠지. 그런데 난민캠프에서의 재정착은? 결국 또 선별 되는 것이다. 그 곳에서 똑똑한 사람들, 리더들. zzzzzzzzzzzz 웃기고 있네. 이 자본주의 , 계급 사회에서 어떻게 이를 탈피할 수 있을 것인가? 극단적 차별(어느 곳에서나 차별은 잔재할 수 밖에 없다는 나름의 타협점을 찾은 언어를 선별했다.)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것. 그것을 위한 개입’. 그 개입이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필요하다는 결론이 든다.

 

다시 신뢰문제로 돌아와서.

내가 내 자신을 신뢰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상의하는 것이 기본 의무인 것 아닌가?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 판단을 어떤 부분에서는 신뢰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는데.

이것에서 말하는 신뢰란, 인간으로서의 인뢰가 아닌/

객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신뢰를 이야기하며,

그렇기 때문에 신뢰를 가질만한 교육과 훈련이 바탕이 되어야 하며, 활동가가 객관적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슈퍼바이징을 최소한으로 전문가가 해야 한다. 슈퍼바이징 하는 주체가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오늘과 같이 일관되지 않은 기독교 변호사로의 연계 등의 태도가 과연 정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한 좋은 점인지, 당신이 기독교이기 때문에 그런건지는 스스로 되물어봐야 할 과제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질문도 가능하겠다. 스스로 다른 분야의 그러한 관심을 가진 이들을 찾아내려고 하는 노력을 하였나?) 객관적 판단에 대한 신뢰가 되지 않고 그러한 전문가를 모실 수 있는 경제적 여력도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의사소통 구조를 만들어가야 하는 책임이 나에게 있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