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민에 적합한가, 그렇지 않은가. 일명 난민협약에 근거한 난민의 정의. 편의상 '난민성'이라고 불리는 난센의 정의로 파생되는 난민과 활동가의 관계 속에서. 법률 지원이 중심이기에 그 외에 다른 복지 지원과 인간 관계를 맺어감에 있어 신뢰도가 난민성과 비례하는 것이 불가피 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내가 에디나에게 법률 지원은 할 수 없으나, 다른 아동 용품을 지원했을때.
아니 이것은 지원 여부를 떠나 관계의 맺음이다. 신뢰를 하고 같이 고민하고 결정하고 나아가는 것들. 나는 그러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가 있는가? 내가 그러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 주관적 판단 그리고 활동가의 역량에 따라 갈리게 되는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한 상대성. 지원의 상대성. 하나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하더라도, 그 상대성으로 인해 생기게 되는 오늘과 같은(난민들이 난센의 지원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되는 것) 오해를 막을 노력은 해야 하지 않는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케이스를 위해 너를 믿는다. 너가 거짓일수도 있지만 너를 믿는다. 너를 믿고 최선을 다한다. 100명 중에 단 한명이 진짜라더라도. - 너의 목소리가 들려 라는 드라마에 나온 대사라고 졸리에게 들었던 이야기
- 국장님의 판단을 어디까지 견제하고, 어디까지 신뢰할 것인가? 나는 다른 모든 난민들에 대해 형평성 있게 지원하는 것이 우선순위에 있는가? 아니면, 그것이 조금은 우선순위에 밀려날 수 있는 것인가?
- 난민이 나에게 개인적인 당부로 말하지 말라. 라고 했을 경우 나는 어디까지 난센에 공유를 해야하며, 난센 활동가들은 어디까지 공유할 의무가 있는가?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그것이 난민과 나의 관계에서의 윤리적 괴리를 만드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혼자 끌고 가야 하는것인가? 국장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공유하기를 원한다. 자신은 모든 것을 결정할 권한과 권리가 있고 나는 그렇지 않다.
- 내가 국장님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노력하지 않고, 경험하지 않고 그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전염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존중할 건 존중해야 한다. 그 생각의 뿌리가. 본질이 무엇인지 나 스스로를 간파해야 한다.
- 신뢰를 뛰어 넘은 관계 맺기(지원의 정도에 일관성을 가지는 것)는 가능한 가? 2차 트라우마, 또는 나 스스로가 회복이 되어야만이 그것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 내가 차별을 받는 것을 극도로 증오함에도, 난센 속에서 이렇게 벌어지고 있는 모순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
'지 렁 이 의 길 > 인 권 활 동 기 록 - 1 2 ~ 2 3 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관으로의 휴가 (0) | 2013.07.22 |
---|---|
다시 생각하며, (0) | 2013.07.22 |
그렇다면 나는? (0) | 2013.07.11 |
지원 여부의 결정 (0) | 2013.07.10 |
은숙씨와의 대화 중 밑줄. (0) | 2013.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