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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수 염 고 래/난 민

난민과 임신중단의 권리에 관한 메모와 번역: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부쳐

by 두치고 2019. 4. 19.


최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지켜보며, 난민의 권리와 관련한 논의를 활발히 하지 못했다는 반성과 함께 몇 자를 끄적여 보았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그래도 그나마 난민의 재생산권리가 의미 있게 논의 된 것은 1994년이다. 당시는 국제인구개발회의의 지지로, 난민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와 함께 기존 의료 정책에 관련 요구를 포함시키기 위한 구체적 방법이 적극적으로 거론되었다. 이 논의를 위해, 전지구적 단위에서 난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욕구 조사가 시행되었고, 개별 구호단체는 난민의 건강권과 재생산권리를 어떻게 포함시킬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지침을 만들게 되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단위들은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조건과 건강한 출산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수술의 합병증에 대한 언급으로 긴급 피임과 사후 관리를 권고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사실상 난민의 임신중지를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프로그램은 포함되지 못했다. 현재까지도 국제사회에서는 여전히 난민 여성들의 재생산권리 및 임신중지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나 연구, 운동이 부족한 상황이다. 유엔인구기금은 난민 집단에서 임신한 여성이 사망하는 25-50%의 이유가 안전하지 못한 임신중절수술의 합병증 때문이라고 한다.
94년에 비해 현재는 임신과 출산 합병증을 위한 의료 서비스가 확대되고, 가족 계획의 접근에 대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일각에서는 유엔난민기구, 유엔인구기금, 유니세프 및 다른 국제 기구들의 활동들이 주로 임신의 결과로서 출산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에 한계를 보고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은 난민 상황에서 큰 이슈가 된다. 난민 여성들은 출신지에서 강제로 이주하게 되며 일시적으로 집을 잃은 것 외에도, 여러가지 환경적 요인으로부터 취약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가족 또는 파트너와 분리가 되거나, 군대와 경찰, 동료 난민, 비난민, 국경 경비대 등에 의해 지속적인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강간은 전쟁의 무기로 기록되고 있으며, 구 유고슬라비아, 르완다, 방글라데시, 우간다, 미얀마, 소말리아를 포함한 많은 나라의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과 같은 정착지는 결코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다. 난민 여성은 대부분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고, 자신 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수단으로 섹슈얼리티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내가 그동안 활동하면서 만나왔던 대부분의 난민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성관계를 강요당해왔고 그 결과, 홀로 자녀양육을 감당해야 했다. 생존과 보호를 받는 대가로 바쳐지는 성에 대한 복종은 난민심사 과정에서 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을 ‘거짓’으로 의심받기 가장 좋은 구실이 되고 있다. 또한 가정폭력의 상황에서도 난민심사를 ‘가족결합’ 패키지로 통과해내야 하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은 난민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가를 짚어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난민이 임신중절수술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본국 및 한국에서 벌어지는 내/외부의 정치적 압력이나 난민 심사 및 체류지위 등에 따른 법적 제한, 종교적 이슈, 기존 이주민/난민에 대해 제한적인 의료 서비스 체계 등이 접근권을 가로막는다. 당연히 당사자들은 긴급 피임이 가능한 경우에도 관련 정보를 모를 수 있다. 무엇보다 국내 법의 적용 문제도 있다. 국내에서 난민 여성의 임신중절 요구는 그동안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만, 임신중절을 시행할 경우 난민심사의 기각을 포함한 강제송환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건강의 위협을 무릅써야하는 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 임신중절이 '비합법화' 된 상황에서 임신중절을 진행한 사례들이 기록되고 있다. ‘낙태법’이 매우 제한적인 탄자니아는 1994년 내전 이후 그 해에 르완다 난민으로부터 하루에 5건의 임신중절 요청을 받았다. 태국, 과테말라, 소말리아처럼 다양한 상황에서, 안전하지 못한 임신중절의 합병증에 대한 난민의 입원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있다. 한편 총인구가 115,000명인 한 수용소에서는 한 달에 6명이, 64,000명인 곳은 9명이 ‘비합법적’ 임신중절로 인한 응급진료가 꾸준히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을 볼때, ‘비합법적’ 임신중절로 인한 합병증을 앓고 있는 여성 중 극히 일부만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반드시 고려 해야할 것이다.
현재까지도 국제 사회에서는 난민 상황에서 여성의 임신중절의 필요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고, 대부분 시민사회에서도 일차적인 건강 관리와 구제에 초점을 맞추는데 허덕이고 있다. 또한 국내 이주정책의 한계로 인해, 이주/난민 운동이 많은 부분 종교를 기반으로 운영/발전되어 왔고 이는 임신중절에 접근하기 힘든 구조가 되기도 한다. 근본적으로는 국제 기구나 시민사회의 지원들이 난민 여성들을 개인의 필요나 권리에 입각하여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또한 명백한 필요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난민 여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난민 여성들은 잃어버린 가족이나 가족을 대체하기 위해 임신 기간을 정하거나, 임신이 강간이나 성 매매의 결과라는 사실을 숨기는 사회적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
장애여성공감의 조미경소장은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을 이야기하려면, 그냥 생식권 보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재생산권을 실제로 행사하기 위해 사회에 수많은 지원 체계가 필요할 텐데, 그것을 논의하는 것은 낙태죄라는 국가의 여성에 대한 통제를 끊은 후에 더욱 자유롭고 다채로울 수 있다"라고 하며, 탈시설 운동과 낙태죄폐지 운동이 만나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난민 운동은 어떤 이야기를 만나고, 해야할 것인가? 앞으로도 꾸준히 난민의 요구를 모으고, 당사자에 관련 권리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지원체계를 확보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서 국내 난민 여성이 처한 상황과 함께 임신중지 및 재생산 권리와 관련한 논의들을 낙태죄폐지 운동과 함께 이야기해가야 할 것이다. 모두를 위한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만들어가기 위하여..
* Safe Abortion_Aimee Lehmann의 원문을 수정 번역, 메모 하여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