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흰 수 염 고 래/난 민

신인종주의와 난민

by 두치고 2019. 4. 4.

김현미: 국민대 난민 이분법 강화, 누군가를 추방하거나 인종화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탄생의 권리가 선엄적 권리인지는 생각해봐야하는 지점이 있다. 예멘 반대에서 두드러진 것은, 난민은 치안적 주체였으며 반난민운동은 애국적 행위이며, 예멘 난민을 받아들였을때 어떻게 될 것이다라는 통찰척 예견자/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과도한 신비화가 됨. 우리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멘 이슈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인종주의를 발화한 사건. 인종주의란 무엇일까? 일상적 담론에서 -백쌤/흑형이라고 하는 것 처럼 - 인종화되어 있음. 인종주의적 차별이 아님을 반박함. 모든 개인은 인종적 특질을 가지고 있는데, 인권을 차등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인종주의라고 할 수 있겠음.
세가지 형태의 인종주의 발현/ 무슬림난민이라는 신인종주의/ 난민사유와는 상관없이 인종화됨/?
김남이- 위험한연대: 이제까지 한번도 연대하지 않은 그룹들이, 담론만으로 연대를 시작함. 우파와 여성 등. 난민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즘의 언어를 차용하며 여성주의적 언어를 차용. 예멘 난민은 비호신청자에서 가해자로 전치역전의 상황에 맞닥들인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신인종주의는 신체의 차별이라는 것은 유럽사회에서 매우 금기 된 것. 90년대 이후 반이민/반난민 정서 이후 담론이 생김. 신인종주의는 인종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행해지는 인종주의임. 갑자기 90년대 이후 새로운 문화와 양립불가능한 유럽이 등장하며, 외국인/이민자/무슬림에 대한 공격 및 추방 운동이 벌어진 것이 신인종주의 운동이었음. 그들이 가지고 오는 특별한 억압 여성억압이라거나, 종족주의는 이민사회에서의 본질적 차이이기 때문에 같은 국가에서 살 수 없다. 다문화주의의 실패를 목격하고 있다 등의 논거로 인종주의가 양산됨. 특정문화가 가지고 있는 반인권적 문제제기이므로, 마치 인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비춰짐. 인종주의적인 편견이 아닌, 국민과 여성보호라는 담론적 역치가 일어나는 것이 신인종주의의 발현임. 난민이 인종화 되는 것은, 신체적 특정화되지 않고 담론화 되는 것. 앞으로 난민의 이슈는 그들이 시리아 난민이냐 이집트 난민이냐와 상관없이 난민이 하나의 인종범주처럼 취급되는 형태가 될 것. 가짜난민성이라는 것을 담지한 특별한 형태의 치안적 관리 대상의 위험한 존재로 낙인. 특정집단을 인종에 결부시켜 낙인.
국가의 생명정치적. 왜 국가가 이런 방식의 태도를 보일까가 궁금했음. 법무부가 일관적으로 치안담론으로 만들었다는 것. 박근혜 지지 우파 국회의원이 정치적 조급주의 내세움. 난민 퇴치라고. 진보 정치의 침묵이나 논거. 인종주의적인 담론이 양산되고, 어떤 부분에서 폭력성이 벌어지는 것이 국가가 방치한 것 즉 국가의 부재를 설명하는 것인가? 국가가 적극적인 생명정치적 인종주의적을 실행한 것인가를 검토해봐야 함.
치안국가적 법무부의 태도. 난민반대법안이 굉장히 많이 빠른 순간 정치적 조급주의. 난민관련 법안이 끊임없이 폐지되거나 개정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많았음. 국민이 먼저다 라고 하는 것은, 국민을 대상으로한 정서를 만들어냄. 국민이 어떤 방식의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있는 것을 간파하여, 이를 위한 책임있는 정치를 시행한다는 방식으로 박근혜 지지자들이었음. 박근혜 정부가 난민법을 통과시켰는데. 푸코가 이야기한 생명정치적 인종주의는 무엇인가? 난민이슈를 왜 난민이슈가 발생했는가, 원인이 무엇인가, 어떤 방식의 구조에서? 어떤 맥락 등을 이해할 필요 없이 자국국민의 정서적 물질적 안녕을 위한 통치 방식이라는 것임. 이미 국가가 자국의 인구를 관리할 수 있는 사목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돌봄의 대상으로의 자국 인구의 감정적 정서적 물질적 심리적 안정을 위해 국가가 난민정책, 인종주의를 적극적으로 통치의 기재로 삼음. 생명정치적 인종주의는 인도주의적 담론과 치안담론의 사이에 있음. 인도주의적 담론은 우리모두 인간이다. 우리모두 박탈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라는 정치군사주의의 지배 등을 그들이 당해야하는 폭력을

국가의 방치와 부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부족. 예멘 이슈를 통과하며 정부나 정치가 보였던 지점을 국가인종주의적 형태의 생명통치적 인종주의 통치라 볼 수 있는가? 여전히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음.//예멘에 대해 설명하는 클리쉐 - 인도주의적인 곤경//

아정쌤이 제기한 치안과 연결해서 국가를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

국가인종주의에 가깝지 않나?
생명정치 자체만에 대한 논의 부족
또 생명정치를 넘어서 죽음 정치 자체에 대한 논의로 다뤄봐도 좋겠다.

살리는 생명의 범주를 좁혀놓음- 난민 간의 진짜 가짜 구분

나영: 위험한 연대의 구체적인 상황들이나 맥락을 이야기해줬다면 더 재밌었을 수도 있을 것 같음/ 정치 사회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해 제기했던 부분들 더 구체적으로 논의하지못하여 아쉬움.

어떻게 비국민의 위치에 있는 사람-문제들이 함께 힘을 모으고 패러다임을 바꿀 것인가/ 난민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민주주의는 경제주의적인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을 정치사회적인 패러다임으로 바꿔나갈 것인가/ 몰카 반대를 난민 집회에서-위험한 연대/ 발전주의적인 것을 확인시켜주는 존재들이 이주민/한국과 자신의 위치를 자각시키는 것이 필요//
국가의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자는 부분에 대해서 - 결국 국가의 정체성으로 환원?
극우 포퓰리즘 - 반동성애 세력


미류: 차제연과 난센의 만남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만나야할까. 난민 제도, 이미 구획되어 있는 제도를 차별금지법을 어떻게 할 수 없다. 혐오 선동이 시작됐다는 것이 중요함. 제도화된 차별속에서 생성되는 혐오. 혐오를 감정으로 생각하고 구조로 생각하는 차이에서 나오는 간극. 수행성으로서의 혐오도 있음. 맞서싸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함. 극우포퓰리즘 반동성애 세력- 개혁정치 세력이 소수에 대한 혐오 (정치적 의견인 것 처럼 착시현장)의 정당성을 만들고 있음. 평등에 대한 정치적 감각. 평등의 정치를 고민할 때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우회할 수 없다. 특히 우파 포퓰리즘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기능하고 있다. 물질적 권리의 동등함에 대한 고민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포괄적 차별운동과 난민운동이 어떻게 만나면 좋을까? 난민으로서만 그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 관계의 지평을 우리가 열어젖힐 수 있을까. 누군가가 떠나올 수 있는 외부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존엄 지키기 위해 더 잘 싸울 수 있을 더 많은 방법을 갖게 해주는 것. 평등의 정치가 그런 맥락에서 고민되면 좋겠다.

한명의 시민으로서 시민사회를 믿을 수 있겠다 .....

타리: 지금 더 물을 것은 각자의 어떤 지향과 정치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비판, 대항할 수 있는가를 더 고민하게 됨. 교차성이 만남까지는 가능하게 하지만, 그 만남 후에 무엇을 가능케 하는지, 무엇을 할지에 대한 토론은 부족.
반군사주의 과정과 역사, 페미니즘 입각해서 국가로부터의 보호가 아니라 구조적 저항으로 만들려는 것,
이 질문들을 어떻게 다른 이슈들과 연결지을 수 있을까. 반군사주의 과정과 역사, 페미니즘 입각해서 국가로부터의 보호가 아니라 구조적 저항으로 만들려는 것, HIV운동의 저항, 장애운동 등등이 난민운동의 저항과 연결짓고 의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왜 출도가 제한되는가 같은 건 생명정치 관점에서 역사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과, 지금의 불평등의 문제와 함께 고민해가고 싶다라는 생각.


타리님이 교차성에 대해 제기해 주신 질문을 들으면서, 난민현장 팀이 교차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사유할 수 있는 장을 적극적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듬.
더 구체적인 이슈로서의 국내 난민 이슈가 제외되어서 아쉬움.



예멘 이슈에서 누락된 것들을 다시 드러내는 작업도 중요하겠지만, 지금의 이슈들이 너무나 많이 누락되어 있다.
유비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음
난민과 포괄적 차별금지법

우리안의 난민성이라는 이야기가 불편한 이유. 1. 난민과 비난민이 여전히 분리되어 있고 2. 난민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3. 나의 경험과 난민의 경험을 합치거나 뭉뚱그리는 것같은 기분 4. 오히려 난민을 분류하는 /난민과 비난민을 가르는 권력의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는게 맞지 않을까 ? 억압의 위치에 있는 생명들을 연결하고 나에게 까지 연결될 수 있는 질문이지 않을까. 그런점에서 아정쌤 제기한 생명정치에서 드러내야하는 존재들의 작업을 좀더 해볼 수

난민의 욕망



아름답지 않은 말/ 침묵 들에 대해.. 티치인을 생각하신 계기가 무엇인지? 생명정치 등의 개념을 이야기하지않고 이야기하는것? 논의를 닫는 방식은 아닌지?


5. 일본에 와서 느끼는 것. 제가 한국에서 한국의 외부에 위치해있을때 일본에 속한다는 위안을 줬었는데, 일본에와서 정작 외부임을 확인할때의 당혹스러움.



재현에 따르는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