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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렁 이 의 길/인 권 활 동 기 록 - 1 2 ~ 2 3 년

2월 활동가이야기

by 두치고 2015. 3. 4.


관계를 통한 회복을 꿈꾸는 난센. 그속에서 어떠한 관계의 형태가 우리를 '회복'시킬 수 있는건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냥 좋은 마음으로 봉사하려고 난센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한 욕구를 가지고 내방하시는 난민분들에게 그 욕구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지원 절차와 내용의 전문성에 직결되는 제 자신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난민분들과의 관계에 적용되기도 합니다. '나는 전문가이고, 전문가 취급을 해주세요'라는 의미로의 전문가가 아니라 '우리가 동등하다는 것', '그것은 당신의 정당한 권리라는 것', 트라우마로 통제권을 상실한 이들에게 '당신은 충분히 당신의 삶에 통제권을 가지고 있고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소통하고 함께 해결해가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의 정립 후에도 저를 포함한 많은 활동가들이 관계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는 또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개인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것 따위의 이야기들이 됩니다. 활동ㅡ또는 일ㅡ과 개인의 삶의 영역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 ㅡ또는 다른 기준에 의해서ㅡ 이에 대한 답이 활동가마다 천차만별인 것 같습니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업무시간 외의 시간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관계를 지양해야 하는 것인지 또는 지향해야 하는 것인지.. 활동가들은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이러한 고민에 맞닥들이곤 합니다.


관계에 대한 고민의 부재는 때때로 밤 늦은시간에도 난민분이 활동가에게 전화해서 '비자'나 '난민신청'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 놓아 활동가의 피로도가 높아지는 일로 이어지기도하고, 또 때로는 활동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난센으로 연락하라' 라며 매정하게 이야기하는 활동가의 이야기에 상처받은 난민분들이 생기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들을 지켜봐오며, 개인적으로는 활동가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관계에 대한 고민이 바탕이 되어야 섣부른 관계의 규명으로부터 오는 상처나 오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난센 안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을 활동가끼리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한 윤리강령 따위의 내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그런 관계는 소수에 불과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욕구의 해결 주체를 활동가와 난민으로 더욱 제한하기 쉽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전문성'에도 역행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로서의 한계-제 개인의 역량과 업무 구조 등으로 인한 한계ㅡ와 과도기적 성찰의 산물(?)로서 현재 이어지고 있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은 그 관계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였습니다. 그 분과의 관계를 이어오며 전문가로서 친구처럼 친근하게 난민분들을 난센에서 만나는 것과 난센 밖에서 일상의 영역을 공유하고 정말 친구가 되는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관계의 형태가 회복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지는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솔직히 이야기하면 아직까지 단 한사람과도 '우리가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무너지는 날들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언제부턴가 저를 Great라고 부르는 친구가 있습니다. 꽤 오랫동안 그는 저를 그렇게 불러 왔는데 최근에야 그 별명을 재조명하게 되었습니다.'Great'라는 별명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계의 간극을 극명히 드러내주는 메타포임을 느끼고 마음이 서늘했던 것 같습니다.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참 미안하고 힘들었던 지난 날들이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참.. 순진한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난민불인정결정 통지서를 받고 더이상 한국에서는 머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 지구상에 갈 수 있는 모든 나라들을 뒤졌을 때.. 우리는 같은 인간이지만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 세계에서 너무나 다른 존재로 취급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에 14시간, 주 7일을 일하도록 강요받는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와 대조적으로 사무실에 편하게 앉아 있는 제 자신을 돌아보았던 순간 처럼. 한국의 구조가 그들의 권리를 다 보장해 주지 않고 있기에, 난센의 역할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 과정들이 참 지난해서.. 난센의 역할이 되려 더 'GREAT'해 진 것이 아닌지. GREAT라고 불리는 그 상황 자체가, 우리의 다름을 더욱 오해ㅡ우리는 똑같이 존엄한 존재이지만, 한국과 세계의 구조를 통과하는 당사자에게는 그 현실이 기가 막힐 지경이라, 사실 원래부터 당신의 권리였지만 마치 원래부터 당신의 권리가 아닌 것 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는 ,, 그래서 우리는 결국 똑같이 존엄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억압되는..ㅡ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우리의 동일한 존엄을 인정하고 일상 속에서 수 없이 침투하는 그런 오해들과 맞서 싸워 왔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스스로 그 간극을 방관했던 것은 아닌지.. 그러니 이제 그만 이렇게 부르는게 좋지 않겠는지.. 에 대해서 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오랜 이야기 끝에 결국 우리는 이 별명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의 긴 편지를 통해 그가 저를 생각하는 애정과 진심을 느꼈고 그 진심에 비하면 이 모든 설명들이 부질 없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전문가이냐, 친구이냐와 같은 관계에 대한 정의나 고민도 중요하지만, 그 순간은 그냥 이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라는 생각만 하게 되었습니다. 숨막히는 현실 속에서 그래도 결국 우리는 해내고, 또 해낼 것이라고 함께 다짐했던 밤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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