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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분 에 물 주 기

웰컴 삼바

by 두치고 2015. 3. 6.



p11

- 출국을 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입국을 하기 위해 체류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러 왔다고. 거의 용서를 빌다시피 말했다. 문득, 그는 자신이 거기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졌다. 의자는 자꾸 몸에 들러 붙었고, 배에서는 꾸르륵 소리가 났다. 그 모든 것을 마주 빨리 말하는 동안,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처럼 느껴졌다. 

- 삼바는 도움을 청하려고 시도했고, 몸부림을 쳤으며, 발로 문을 쾅쾅찼다. 말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는 마치 나쁜 짓이라도 한 사람처럼 고개를 떨궜다. 그는 조금 전에 꼬마가 느꼈을 창피함을 이해했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p25

- 그가 목표에 그토록 근접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으로부터 전속력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프랑스에서 벌일 모험이 그렇게 끝날 수도 있었다. 그렇게 곧장 루아시 공항으로 끌려가 말리행 비행기에 던져질 수도. 그는 창살을 통해 수백년 된 건물들, 금빛으로 물든 강둑의돌들, 대서양까지 수백 킬로 미터를 흘러, 아마 그가 도로 끌려가게 될 고향, 아프리카 대륙의 해안을 적시게 될 강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p47

- 그곳에서 사람들은 무엇보다 그들이 태어난 장소에 의해 정의되었다. 파키스탄, 브라자빌콩고, 킨샤사콩고, 러시아, 터키, 베트남, 에콰도르, 방글라데시, 말리. 그 나라들은 현실성을 잃어버렸다. 사람은 그들이 태어난 장소에 의해 정의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은 다른 곳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벌 받을 수 없었다.

- 그곳에서는 나라 이름이 사람 이름이 되었고, <자발적인>이나 <꿈>처럼 간단한 낱말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었다. 


p61

- 그는 전쟁과 폭력을 경험했다. 하지만 어떠한 정치 집단에도 속하지 않았고, 전 가족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어떠한 증명서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충분할 만큼 활동적이지도 않았고, 전 가족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어떠한 증명서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충분할 만큼 활동적이지도 않았고, 충분할 만큼 위협을 받지도 않았다. 마치 그가 보거나 겪은 그 참혹함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듯이. 전날 밤 모든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그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p72

- 그녀는 깜짝 놀랐을 때도, 화가 났을 때도, 손가락을 노랗게 물들이는 담배를 잘못 말았을 때도 <빌어먹을>이라고 말했다. <빌어먹을>은 그녀가 가장 즐겨사용하는 감탄사 (우와putain!)인 동시에, 부사(존나 열받게 하는 putain de rageant), 감탄 형용사(끝내주는 자동차 putain de bagnole) 그리고 욕설 (그녀가 백인에게나 흑인에게나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씹새끼>, 혹은 <개새끼>)이었다.


p78

- 삼바는 <저스트 두 잇>을 의미하는 눈부신 쉼표가 그려진, 검은 가죽으로 된 우아한 농구화를 고르는 대가로 모든 것을 양보했다. <일단 해, 성공은 오직 네 손에 달렸어>, 새 나라의 아스팔트 위로 새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의 새 신발이 이렇게 말했다. 에어쿠션 밑창에 부드러운 가죽으로 된 신발은 너무나 가벼워서 마치 맨발로 걷는 것 같았다.


p121

- 그는 그곳에서 그에게 목소리와 이름이 있다는 것을, 그가 생각하고, 울고,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사람을 잃게 될 것이다. 그는 미쳐 버리거나 거지가 되고 말 것이다. 그 혐오스러운 마쿰바의 사내가 되고 말 것이다.어쩌면 고향으로 돌아갈 힘조차 없게 될 것이다. 삼촌이 없으면,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었다. 



p124

- 우리는 그들에게 부드럽게, 하지만 동정심에 허우적거리지 않고, 한마디로 말해, 솔직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했다. 우리를 만나러 오는 불법 체류자들은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해서 무슨 말이든 들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거짓말이나 헛된 희망만 빼놓고. 그래서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아직 가능한 것을 설명했다. 



p127

- 매주 만나 서로의 삶을 얘기하다 보니, 우리는 거의친구처럼 되었다. 그래도 우리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피부 색깔, 사회 계급, 교육 수준에서 기인 했다. 그 격차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이 우리를 구별 짓는 것이었다. 서로에 대해 궁금하게 만든 것이기도 했고, 나 역시 <발가락으로 만 담배>를 피우며 잠시 쉬는 동안 그에게 내 삶을 조금씩, 가끔, 단편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p132

- 네가 이해해야 할 것은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은 늘 자기들의 실수를 인정하기보다는 너한테 거짓을 강요하는 쪽을 택할 거라는 사실이야. 그러니까 네 말이 진실이라는 걸 어떻게든 증명하려고 들어서는 안 돼. 너도 똑똑히 봤잖아. 이민국 국장은 널 믿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체류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야. 

- 사용자들은 그런건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아. 아무도 네 나이를 묻지 않을 거다. 사진 속 얼굴이 네 얼굴이 아 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거야.



p205

- 라무나가 아프리카에서는 여름밤에 비가 오면 흔히 하루살이라 불리는 곤충들이 고기와 바람 냄새에 흥분해 등불 근처에서 앞날개를 비벼 대고 붕붕거리며 선회비행을 하기도 하고, 접시에 떨어지기도 한다고 얘기해 줬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그 곤충들은 빙빙 돌고, 벽에 부딪히고, 가끔 반만 죽어 땅에 떨어지기도 했다. 그것들은 불빛의 매력에 저항하지 못했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나 컸다. 그것들은 등 주변을 미친 듯이 맴돌았다. 그러다 등을 끄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저녁때만 해도 나비였던 하루살이들은, 다음 날 아침에 보면 탁자 위에 흩어져 있는 작은 낙엽들 같았다. 삼바가 그 특별한 비 냄새가 아직도 느껴진다고, 그 곤충들이 날면서 내던 <슈우>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고 말했다. 가끔, 땅에 떨어진 그 곤충들을 쓸다 보면, 그중 한 마리가 훌쩍 날아올라 마지막 비행을 통해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도 그 하루살이랑 같아' 삼바가 말했다.



p213

- 입에 담기 끔찍하지만, 난 우리의 삶이 오로지 우연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해요. 내 삶에는 논리적인 게 전혀 없어요 .설명할 것도 없고. 그래요, 나에게는 여기까지 올 힘이 있었어요. 아마 그 힘이 세상사의 흐름에도 일조를 했겠죠. 하지만 난 나의 탄생과 지금 내 삶의 사이의 끈을 여전히 찾아내지 못했어요. 내 삶은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지 않아요. 그것은 순간순간 나에게 강요되었을 뿐이에요.



p243

- 그에게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방에 널려있는 돌, 물, 건물, 심지어 나무들까지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처럼 놀랜 눈으로 그가 여기까지 나아온 여정을 지켜보면서, 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람에게 벌을 받을까 봐 두려워 고집스러운 침묵을 지키는 것 처럼 보이는 날들이 있었다. 사물들조차 힘을 모아 그에게 반대하는 것 처럼 ㄹ보이는, 온 세상이 그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날들이 있었다. 

- 그녀는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p267

- 삶을 망치는 기억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장소가 이 땅에 존재한다고 했어요. 잊을 수 없는 이미지들의 성소요. 브라자빌에 사는 그녀의 사촌이 그렇게 말했대요. 그게 그녀가 유럽으로 건너온 이유 중 하나래요. -넌 그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할게다.



p283

- 프랑스에 남기 위해 자기 자신을 부인하기까지 했다. 


p302

- 백인들에게는 프랑스를 사랑하라고 요구하지 않아.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가 내미는 증거들이 결코 충분치 않은것처럼 굴잖아. 



p333

- 하나의 이미지가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걷는 사내, 달리는 사내의 이미지가. 나는 그것을 지우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나에게 힘을,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을 준다. 

자유는 수치심보다 더 전염성이 강하다.


달려, 삼바,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