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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록 색 다 이 어 리/가 족

아빠가 해준 옛날 이야기-할아버지 편

by 두치고 2015. 2. 18.



1. 할아버지는 저기 부두의 세관에서 일을 했다. 그때가 할아버지의 한창 전성기였는데 복어도 가지고 오면 이만한게 아니라 이따만한 것을 가지고 와서 먹곤 했다. 원양어선에서 가지고온 물건을 싸게 가지고 와서는 걸핏하면 잔치를 벌였다. 술을 술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명태 한박스씩 가지고 와서 마을 사람들을 다 불러다가 잔치를 하곤 했다. (이때 할머니가 말해주신 나은이 할머니 이야기가 생각난다. 나은이 할머니도 잔치를 자주 열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마음씨가 참 좋았다고 했는데.. 내랑 아빠가 할아버지 마음씨를 닮은게 아닐까 싶었다) 이 일은 아빠가 중학교 때 초등학교때 일이다. 굉장히 좋은 직장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무슨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누명을 쓰게 되면서 빨리 퇴직하게 되었단다.

2. 할아버지가 그 이전에는 조방앞에서 방직 기술을 배운 기술자였는데 기술자 중에서도 일등급 기술자였단다. 어느정도였냐면 방직을 하는데 의자가 띠용띠용 그 리듬을 탈 수 있도록 만들 정도라나? 그때 할머니를 만났더랫다. 방직공장에서

3. 할아버지는 개성에서 큰 할아버지랑만 단 둘이 주막밥을 싸들고 잠시 며칠간 있다 돌아온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선 이후로 전쟁이 길어져 영영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7-8형제자매였는데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큰 땅에서 농사를 지엇더랬다. 그날로 전쟁을 피해다니던 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런데 어느날 미군들이 막 탱크를 끌고오더니 전쟁에서 차를 못쓰게 할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총으로 그 자동차가 움직이지 못하게 모든 기능을 다 고장내고 홀연히 사라졌단다. 그래서 큰 할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그 다 고장난 셰단? 차를 다시 다 조립하고 어디서 주워온 국회의원? 딱지를 붙여서 통과 하지 못하는 곳도 당당히 정부의 감시를 피해 당당히 통과했다고 한다. 그래서 급하게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을 그 차로 날라다 주며 돈을 많이 벌고 전쟁통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 큰 부자가 되었는데 그 돈은 주로 큰 할아버지가 다 가지고 갔다. 그래서 둘은 서울에서 지내다가 큰할아버지가 사기를 당해서 그 돈을 날렸다. 그래서 큰할아버지는 경기도 금천으로 가서 다시 버스 관련일을 하다가 또 사기를 당하고.. 그렇게 살다가 할아버지는 큰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다가 독립해야겠다고 싶어서 부산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큰할아버지 집에 돈을 보태주곤 하곤 했다. 아빠는 서울 유학생활할때 금천에서 지하철로 한시간씩 왔다갔다하며 앉지 못하고 그 지하철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가 잘됬다고 한다. 큰 할아버지는 아빠가 일본 유학갈때쯤인가 돌아가셨다.


강냉이 죽도 먹지 못했던 할아버지 세대. 3년을 기술을 배우기 위해 무급으로 일하던 세대. 할아버지는 그런 세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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