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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분 에 물 주 기

살아간다는 것-위화

by 두치고 2014. 10. 2.

서문이 좋아서 아예 사진찍어 올리기.












p55-아버지의 죽음

"자네, 예전에 내가 넘어지는 거 본 적 있나?"

왕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지.

"없습니다요, 영감마님."

아버지는 기분이 약간 좋아진 듯 또 물으셨다네.

"처음 넘어진 거지?"

"그럼요, 영감마님?

아버지는 몇 차례 허허 웃으셨는데, 잠시 후 웃음을 그치고는 눈을 감으셨다네. 




p62

 그 비옥하고 우거진 땅에는 어딜 가나 푸구이 같은 사람 천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과연 이후의 나날들에 푸구이 같은 노인을 수없이 만났다. 그들은 모두 푸구이와 같은 옷을 입었는데, 하나같이 바짓가랑이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팬 주름에는 햇빛과 진흙이 꽉 들어차 있었고, 그들이 나를 향해 웃을 때면 그 텅 빈 입속으로 몇 개 남지 않은 이가 보였다. 그들은 종종 탁한 눈물을 흘렸지만 슬퍼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기쁠 때도, 심지어 아무 일도 없는 평화로운 때에도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울고 나서는 시골의 진흙길처럼 거친 손가락을 들어 눈물을 훔쳤다. 몸에 붙은 검불을 털어내듯 그렇게 말이다. 

 그러나 푸구이 노인처럼 잊히지 않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그처럼 또렷하게, 또 그처럼 멋들어지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말고는 또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자기가 젊었을 때 살았던 방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늙어가는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노인을 시골에서 만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가난하고 고생스러운 생활이 그들의 기억을 흐트러뜨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대개 지난 일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대충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에 별다른 애정이 없는 듯, 마치 길에서 주워들은 것처럼 몇 가지 사소한 일들만 드문드문 기억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 사소한 기억마저도 자기가 아니라 남에 대한 것이었고, 한두 마디 말로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표현해버렸다. 



p99-리오취안의 죽음

"여기가 어디야?"


"이 몸은 어디서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구나"




p126-펑샤를 다시 맡기러 가는 길

걸어가는 동안 내 기분은 정말 죽을 맛이었네. 그래서 일부러 펑샤를 쳐다보지 않고 내처 앞으로만 갔지.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고, 찬바람이 얼굴을 쉭쉭 때리는가 싶더니 목덜미에까지 파고들었어. 펑샤가 두 손으로 내 옷소매를 꽉 잡았는데 역시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 날이 컴컴하니까 펑샤가 돌에 발이 걸린 모양이야. 조금 걸어가더니 몸이 기우뚱하더군. 쭈그리고 앉아 두 발을 문질러줬더니 그 작은 두손을 내 목에 얹었다네. 손이 정말 차가웠는데,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더라구. 거기서부터 펑샤를 등에 업고 갔지.

 성안에 이르러 그 집이 가까이 보일 때쯤 가로등 밑에 펑샤를 내려놓고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네. 우리 펑샤는 얼마나 착한 아이였던지, 그때까지도 울지는 않고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보기만 하더라구. 내가 손을 내밀어 그애 얼굴을 쓰다듬어주니까, 그애도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매만지더군. 그 작은 손이 내 얼굴을 쓰다듬는데, 다시는 그 애를 돌려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펑샤를 도로 업고 길을 돌아 나왔지. 펑샤는 그 작은 팔로 내 목을 꼭 감아 안더니 얼마쯤 가서 갑자기 나를 꽉 껴안았다네. 그애도 자기를 다시 집으로 데려간다는 걸 알았던 게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더니, 자전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더군. 나는 결연하게 말했지.

"우리 모두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펑샤를 돌려보내지 않겠소."



p213

우리는 둘 다 그 애보다 먼저 죽을 테니 펑샤가 거두어주겠지만, 펑샤는 이대로 늙어간다면 죽은 다음에 거두어줄 사람 하나 없지 않겠나. 


> 거두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p229

펑샤네 집에 갈 때면, 자유 경작지에서 푸성귀 몇 포기를 뜯어 바구니에 넣고 자전이 만들어준 새 헝겊 신발을 신고 갔다네, 푸성귀를 뜯다가 신발에 진흙이 묻으면 자전은 나를 불러 세워 진흙을 털어내라고 했지. 그말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네.

"다 늙어서 신발에 진흙 묻는 걸 신경쓰나?"

"그렇게 말하면 안돼요. 사람은 늙어도 사람이잖아요. 자고로 사람은 깔끔해야 하는 법이라구요."



p246-펑샤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얼시와 전했던 날

우리 넷은 울면 울수록 마음이 아팠다네.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서 얼시가 다시 싱긋 웃음을 지었지. 


그날 우리 네 사람은 울다가 웃었고, 또 웃다가 울었지.



p250-두 아이의 죽음

내 두 아이는 모두 그렇게 아이를 낳는 와중에 죽었다네. 유칭은 남의 아이 때문에 죽었고, 펑샤는 자기 아리를 낳다가 그렇게 됐고.



p255-자전의 죽음이 가까워져 왔을 때


사람이란 말일세, 사랑 있을 때 아무리 고생을 많이 해도 죽을 떄가 되면 자기를 위로할 방법을 찾는 법이라네. 



p278-쿠건의 죽음 이후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면,ㅡ 때로는 마음이 아프지만 때로는 아주 안심이 돼. 우리 식구들 전부 내가 장례를 치러주고, 내 손으로 직접 묻어주지 않았나. 언젠가 내가 다리를 뻗고 죽는 날이 와도 누구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말일세.

나도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네. 내가 죽을 차례가 되면 편안한 마음으로 죽으면 그만인 거야. 내 주검을 거둬줄 사람을 구태여 바랄 필요가 없단 말일세. 마을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는 와서 묻어줄 거 아닌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을 테니. 나는 남들한테 공짜로 묻어달라 하지는 않을거라네. 베개 밑에 십 위안을 넣어뒀는데 그 돈은 내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건드리지 않을거야. 마을 사람을 모두 그 돈이 내 시체를 거둬줄 사람 몫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p279

무슨 일인가 싶어 기웃거리다가 이 소를 발견했다네. 녀석은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옆으로 기울인 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지. 그 옆에서는 팔을 걷어 붙인 남정네 하나가 바닥에 머리를 옆으로 기울인 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지. 그 옆에서는 팔을 걷어 붙인 남정네 하나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칼을 갈고 있었어. 둘러선 사람들은 칼을 어느부위부터 대는 게 좋다는 등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네. 늙은 소가 구슬프게 우는 걸 보니 마음이 너무 괴롭더구먼. 생각해보게. 소란 놈은 얼마나 불쌍한가. 평생 사람 대신 죽도록 일만했는데, 늙어서 기력이 다하면 또 잡아먹히고 말지 않나.

녀석이 도살당하는 꼴을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어서, 그곳을 떠나 서둘러 신펑으로 향했다네. 그런데 걸어가는 내내 녀석이 계속 눈에 밟히는 게 아니겠나. 자기가 죽을 걸 알고 대가리 밑이 온통 눈물바다가 되도록 울고 있던 그 녀석이 말일세.

걸음을 옮길수록 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급기야는 그놈을 아예 사버려야겠따고 결심했지.


p282-마을 사람이 푸구이와 소를 보고 한 이야기

"두 늙은이가 다 죽지를 않네."




"오늘 유칭과 얼시는 한 묘를 갈았고, 자전과 펑샤는 칠 할에서 팔 할정도 갈았고, 쿠건은 아직 어려서 반 묘를 갈았단다. 네가 얼마를 갈았는지는 내 말하지 않으마. 그걸 입밖에 내면 내가 너한테 무안을 준다고 여길테니까. 돌려 말하자면 너는 나이가 많으니 이 정도 가는 데도 온 마음과 힘을 다 썼다고 볼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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