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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수 염 고 래/공 부

미쉘푸코1- 내가 왜 오늘의 내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면

by 두치고 2013.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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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철학의 철자도 모르고 도올의 철학강의 릴레이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서 더욱 깊어진 철학에 대한 허영심은 결국 시립도서관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검색하게 했고- 기억하는 바로는, 끝없이 몰려오는 졸음을 뚫고 읽어냈던 그 니체의 사유들이 철학과의 첫 대면-또는 대격돌-이었을 것이다. '철학'과 첫사랑에 빠진지도 6년째. '철학은 안된다'는 근거 없는 어른이들의 이야기에 좌절을 느낄 만큼 얇고도 얇은 풋사랑이었지만 오랜 세월 그 끈을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발걸음을 찬찬히 내딛을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미쉘푸코를 선택했다. 그를 아직도 잘 모르고, 앞으로도 영원히 알지 못 할지도 모르지만 부딛혀본다. 그들의 사유를 빌어 나를 돌아보고, 지혜를 구하기도 때로는 그들에게 실망하기도 하며 부유해나갈 것이다. 




미쉘푸코 1강-밑줄 쫙쫙


* 푸코는 어떤 경우에도 결국은 배제된 자들을 위해 쓴 글이다. 그는 필연적으로 아나키스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푸코의 세계에는 비정상이 없었다. 

* "당신은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자유롭습니다."

* "보편이라는 것은 없다. 지키고 싶으면 지키고, 지키고 싶지 않으면 그러지 마라"


* 푸코는 결코 합리성을 거부하지 않으며, 다만 '전통적' 혹은 '정토억' 합리성만을 거부한다. 곧 절대적이며, 따라서 객관적이고, 따라서 개수가 '하나'인 것으로 이해되는 이른바 '합리성'자체란 사실은 단지 이러저러한 방식을 따라 역사적으로 구성된 합리성의 '한' 형식에 불과할 뿐, 합리성을 유일한 합리성 자체의 양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고 보고, 이를 '계몽주의의 협박'이라 부른 것이다. 푸코는 결코 비합리주의자가 아니며, 다만 합리성의 객관성, 보편성, 절대성, 유일성만을 부정한다. 따라서 푸코에게 합리성의 형식은 늘 복수이자, 다수의 형식, 곧 합리성'들'의 형식 아래에서만 나타난다. (인간의 판단은 때로는 처음부터 감정적이다. 그것이 80%, 심지어 100%이기까지도 보인다. 균형잡힌 사고는 무엇인가? 결국 합리성 '놀이'일 뿐이다. 사실은 없고 해설은 있다.

*푸코는 푸코 자신의 사유가 오늘의 문제에 답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한다. 오늘에 대한 관심은 곧 현재의 진단학. 현재의 진단학은 그 명칭부터 니체에게서 따온 것인데, 니체는 자신의 저술을 통해 여러 차례 자신의 철학이 오늘, 현재를 진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 모헤로스로부터 소크라테스 이전까지가 그리스의 건강한 황금시대였다고 말하면서, 소크라테스와 그를 이은 그리스도교가 모든 것을 잘못된 방향으로 돌려놓은 원흉이며, 이를 이은 동시대의 민주주의, 자유주의, 공리주의,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가 모두 병든현상이라고 본다. 따라서 올바른 사유는 니체에게 반시대적고찰일 수 밖에 없으며, 이 반시대적 고찰은 다름아닌 현재에 대한 진단 행위 이다. 니체-푸코적 사유는 곧 철학함이란(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불변한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매일매일 변화하는 오늘-여기-우리의 문제를 다루는 활동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를 탈피시켜주는 푸코의 철학

*오늘 우리는 누구인가? 오늘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말했을 때의 '나'는 17세기 프랑스에 살던 데카르트라는 사람과는 무관한 그야말로 '인간 자체의 본질'에 대한 규정으로서의 나이다. 그러나 푸코는 바로 이러한 질문 자체가 시공을 초월한 것이 아닌 가령 17세기 유럽 프랑스의 에피스테메에 의해 고고학적으로 혹은 계보학적으로 구성된 사회역사적 구성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푸코의 주장은 이 세상에 달력도 지도도 없이 이루어진 것, 곧 완성된 채로 하늘에서 떨어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없다, 그야말로 전혀 없다는 주장이다. 모든 것은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 혹은 역사가 있을 수 없다고 보이는 것'의 역사를 기술해볼 수가 있다. 가령 광기, 섹슈얼리티, 영혼, 정신, 이성, 육체, 역사, 사랑 같은 것의 역사이다. 


*나는 어떻게 오늘의 내가 되었는가? 푸코의 사유는 '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니체와 푸코는 어떤 무엇의 본질이 시공을 초월해있다.는 생각 자체가 특정시기, 특정지역의 사회적 역사적 구성물이라고 본다. 


* "그렇다. 나의 이러한 주장도 다만 하나의 관점이다" 이것이 '사실은 없고 관점만 있다' 혹은 '진리는 없고 해석만이 존재한다'는 니체의 관점주의 이다. 곧 '진리'인 자신의 입장만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다 '관점'이라는 주장을 포기한다. 니체가 자신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말했던 것처럼, 관점주의는 자기 관점의 편파성, 따라서 비논리성, 부당함마저도 받아들인다. 

* 푸코는 이른바 지도도 달력도 없는 '진리'란 사실은 그렇게 구성된 하나의 진리 개념에 불과하며, 그렇게 구성된 진리의 틀 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그것이 '옳다'고 느껴지도록 '조건화'된 것이라고 말한다. (각각의 시기마다 지식이 다른 어떤 방식도 아닌 바로 그 방식으로 배치되게 만드는 하나의 원리, 혹은 하나의 에피스테메 곧 인식론적 장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푸코에 따르면, 각 시대는 오직 하나의 에피스테메만을 갖는데. 르네상스 시대는 '유사성', 고전주의는 '재현', 근대는 '역사'를 갖는다)이때 우리가 탐구해야 할 것은 '주어진'문제틀 곧 영원불변하는 절대 진리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틀 자체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구성되었는가를 살피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