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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록 색 다 이 어 리/토 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by 두치고 2013. 7. 23.



너무 감정적이다. 다른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라.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집으로 돌아가며 아람이가 나에게 던진 한마디와 연결 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자보다 후자인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대한 지구력이 부족한 나의 모습을 반추하는 한마디 인것 같다. 방글라데시에서, 엄마가 했던 지적과도 연결이 되는 듯 하다. 그것은 즉 "나는 쉽게 피곤해 한다."

나는 왜이렇게 쉽게 피곤해하는가? 내가 힘든 시기가 있고, 인생이 즐겁지 만은 않다고 아람이에게 대답한 것은 궤변요즘 나의 모든 이야기들은 궤변인 것 만 같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막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내 정신상태의 방향성이 피상적인 궤도에 머물러 있는 것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ㅡ이었다.  

나는 타자로부터 피곤함을 쉽게 느끼는 것 같다. 그것이 티가 잘 난다. 왜 그런 것인가? 왜 그런 것일까? 어떤 관계로부터는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상태에서부터는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 쉽게 피곤해질 때가 있다. 이는 내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이기도 하며,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끊임없이 상대방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의미없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 동조하는 것이 힘들다. 그런데 그 의미없는 것은 정말 의미가 없는 것인가?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것 그 자체가 기쁨인 사람이 있다. 그의 삶과 나를 비교해 보았을 때 나는 무엇이 기쁨인 것인가? 어떻게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이 기쁨일 수가 있는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야 말로 정말 세상의 평화를 논할 자격이 있고, 인권국가를 꿈꿀 자격이 있다. 나는 오로지 나의 경험을 근거한 ㅡ그것이 선험적이든, 경험적이든ㅡ 나와 같은 이들에 대한 공감, 지나친 공감이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나와 같은 분노를 ㅡ또는 그 이상의 경험을 통한 분노ㅡ 다른이게 느끼게 되는 경험이 견딜 수 없음이다. 공감이 빠르고, 이해의 시초 ㅡ단어를 까먹었다, 이해는 그 사람을 완벽히 안다는 것이기 때문에. 안다는 것을 섣불리 이야기 할 순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이해의 시초라고 해야 할 것이다ㅡ를 통한 그 사람을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타자에 대한 관심은 절대적으로 없다.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해 그 공감을 통해 내가 과거의 분노를 재경험하지 않고자 함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즉 난센은 오로지 나를 위한 선택인 것이다. 


생존하고자 함에, 어쩌면 정말로 잔인한 인간이다. 나는. 이해관계ㅡ내가 추구하는 진리, 신념, 또는 그러한 맥락들ㅡ에 벗어난 오로지 나의 주관적 판단을 근거로 한 '피상적'이라는 ㅡ아주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 가장 중요한 진리라는 누군가의 충고에도 불구하고/변명하자면, 그럼에도 소소한 즐거움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그 소소한 즐거움의 코드가 다른 것이지 않을까?ㅡ판단이 드는 이야기들에 쉽게 지친다. 재미가 없다. 아니면 권태를 느낀다. 그것이 나의 오만이다. 그 권태의 뿌리는 오만이다. 섣불리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 '피상적'인 이야기들의 뿌리를 알고자 함이 없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면 그것이 하나하나의 기쁨이고 진짜일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이 또한 궤변일 수도 있다. ㅡ무엇 하나 명확히 하지 않는 뿌리 깊은 '결정'에 대한 두려움, 어쩌면 '절대'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추구하고자 하는 지혜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것에 도달하고자하는 노력이 부족한 '게으름'일지도 모른다ㅡ정말 나의 무력함. 타자가 느끼는 일상에서부터 오는 권태와 우울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그것의 다양한 근원 중 하나가 타자인 것이라면,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나? 이제는 그만 허우적 될때도 되지 않았나? 한심하지 않나? 아니 한심하다기 보다는, 극복하고자 함에 사실은 그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그것이 나를 편안하게 하기 때문에. 우울에 젖어 있는 나의 모습은 유아기에 벗어나지 못한 나르시시즘의 연속인 것인가?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기에 끊임없는 '자신'에게로의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이것은 악순환의 고리인가............어디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그냥 정신분석을 받아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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