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렁 이 의 길

2022년 6월 11일_보리 제작일지

두치고 2022. 6. 11. 16:37

1. 나레이션이 과도해서 영상의 자리가 없을때, 영상의 자리를 만들어줘야한다는 이유로 나레이션을 무조건 다 빼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한 후에 그것을 나레이션이나 영상으로 채워야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레이션을 무조건 빼야한다는 강박 때문에 정작 내가 설명하고 싶은 것들, 말하고 싶은 것들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 의미가 잘 전달이 되지 않는 것

2. 어디까지를 설명하고, 어디까지를 여백으로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일상적으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사건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고 통과한 사람인데, 처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떤 정보들이 필요한지, 어떻게 이야기하는게 잘 전달이 되는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 이야기 잘하고, 잘 듣는 사람이 다큐도 잘 만들겠다

3. 나레이션도 내가 관객에게 이야기를 거는 방식, 독백의 방식, 친구와 대화하는 방식 여러가지가 있는 것인데, 지금의 나레이션은 나는 ~했다는 식의 일기장에 가깝다. 자연스럽지 않고, 오히려 나레이션이 내용을 훼손하는 부분이 있다. 내가 다큐를 만들기 위해 촬영을 한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연설명을 위해 나레이션이 들어가야하는 것은 맞지만. 어떤 방식의 나레이션이 영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정보전달이 가능하게 되는 부분일지를 고민해보면 좋겠다.

4. 자막: 영어자막도 재밌게 넣으면 좋겠다.

5. 내가 경험한 것들, 특히 보리와 관계하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한 내용을 넣었을때, 그들을 자칫 악마화하게 되어 보리와의 관계를 훼손하게 될 것에 대한 극도의 예민함과 두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공론화 할때의 책임감. 그들의 동의 없이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아도 되는지에 대한 경계가 있어 그 부분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주관적인 경험이라는 면에서 차이는 없고, 오히려 주관적인 경험을 객관적으로 보이려고 하는것이 더 객관적이지 않게 비춰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내가 내 입장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준다고 한다면, 내 생각이고 내 판단이기 때문에, 그 부분(주관적 경험)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관객이 나의 경험을 듣는자 입장에서 몰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6. 나레이션은 그러면 어떤 형태가 되어야할까

누구의 목소리여야 하는가? 내 이야기는 나의 경험과 내 생각이 주요한 줄거리가 되므로, 다른 전문 나레이터보다는 내 목소리를 직접 가장 자연스럽게 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말해야 자연스러울까. 나는 살면서 글로써는 독백을 해봤어도 말로써는 독백을 해본적이 없다. 물론 유튜브에 자기 독백형식으로 나레이션을 깔며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형식의 이야기도 있지. 그런데 내가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답보다는 질문들이 많다. 나는 내 질문에 응답해줄 사람들을 찾고싶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질문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형태의 말하기가 되어야할 것이다. 내가 자연스럽게 질문할 수 있는 형태는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때 가능하다. 역시나 레퍼런스가 중요하다. 나레이션의 종류에 대해서 찾아보면 좋겠다. 

7. 내가 영상(나레이션과 영상언어, 음악, 소리 등)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와 핵심 메세지들은 무엇인가?

* 사건

 

(보리와 만나고 관계맺게 된 배경)

- 그 절에 쉼터가 있어서 좀 쉬려고 갔지. 근데 첫날에 고양이가 자꾸 쫓아오는거야. 짐 옮기는 틈에 방안으로 계속 들어왔어. 나는 고양이랑 같이 살았던 적이 없으니까. 무서웠지.

- 근데 어느날 비가 많이 오는데 보리가 큰 소리로 집앞에서 울었어. 비를 쫄딱맞고 있는거야 그래서 같이 자게 됬지.

- 근데 걔가 매일매일 집으로 왔어. 그래서 결국 같이 살게됐지.

--(보리의 상태, 문제의 발견)

- 근데 보리가 이상했어. 질병이 있었어.

- 보리의 생활 환경을 관찰했어. 물도 제대로 못먹고, 밥도 곰팡이 핀. 그래도 기생충이 낫지를 않더라

- 찾아보니까 보리가 아픈 이유는 쥐잡이라는거야.

- 그래도 아프니까 병원에 데려가야하는거 아닌가했어. 그러데 동물을 너무 애 취급하지 말아라. 그렇게 보살피는게 동물의 버릇을 나쁘게 한다. 내가 살피지 않아도 동물들은 알아서 그 생활에 잘 적응한다. 너무 오냐오냐키우는게 자생력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하드라.

-(보리가 이곳에 온 배경, 보리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

- 보리가 어쩌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알아봤지. 보리는 광주에서인가 태어나가지고 원래 집에서 살았대. 근데 이 절에 쥐가 많아서 고양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공양주 보살님이 쥐를 데리고 온거라.

- 그래서 공양주 보살님나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미운거라. 무슨 고양이가 자기 도구도 아니고. 물도 제대로 안주고, 곰팡이핀 사료 주면서.. 간식 너무 많이 주면 쥐 안잡는다하면서.. 보리는 맨날 잘곳 구한다고 온 절을 돌아다니는데.. 이전에 여기 고양이들이 담비한테 잡아먹혔다고 하더라고.

- 그 이야기 듣고나니까 보리가 왜 맨날 온 절을 돌아다니면서 밤새도록 사람들 집앞에서 우는지 이해가 되드라. 다 이유있는 행동이지. 보리는 살기 위해서 안전하게 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거다 싶드라.

--(보리는 밖에서 살아야할까 안에서 살아야할까)

- ㅋㅋㅋ 보리는 사냥능력이 떨어져. 호두같은 길고양이는 새도 잡고 하는데 보리는 절대 못잡더라. 언제드라? 보리가 15미터 정도 되는 나무위를 마음껏 달려서 올라가는 모습을 본적이 있어. 진짜 충격받았어. 고양이가 나무를 그렇게 탈 수 있는지 몰랐는데, 생각해보면 그게 자연스러운 본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드는거야.

- 보리의 상태를 물어보고 싶어서 집사들 모임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다들 보리가 쥐사냥하는 모습을 보더니 부러워하는거야. 우리집의 고양이들은 창문밖만 하루종일 보고 있따면서.. 전문가들은 집에 살던 고양이들은 생존력이 낮아서 집에서 살아야한다고 하는데 진짜 그런걸까. 보리가 집에사는게 좋은거야 바깥에 사는게 좋은거가? 오히려 보리가 이 숲으로와서 자기 본모습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보리의 상황에 대한 내 감정)

- 너무 화가나서 엉엉 울었다이가. 사람들이 음식물쓰레기를 많이 버려서 쥐가 많아진건데, 왜 그 쥐를 보리가 잡아서 병에 걸려야하는지 모르겠는거라. 공양주 보살님 원망을 많이했지. 있으면서 많이 싸웠어

- 근데 보살님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드라. 이 절이 돈을 벌기 위해 운영되는 곳이 아니니까.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고. 보살님은 쥐땜에 잠도 제대로 못주무시고. 새벽부터 힘들게 활동가들 음식해준다고 돈도 제대로 못받고 일하시는거라. 나는 그 밥을 매일 공짜로 얻어먹었고. 결국 내가 이 구조에 공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 보리는 매일 빠짐없이 새벽 4시부터 밤11시까지.. 눈만뜨면 열심히 사냥하는데. 내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 고양이가 자기 목숨을 바쳐서 이 문제를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 

--마무리

- 사람들은 쥐만 잡아주길 바랬지. 근데 보리는 다람쥐도 잡고 개구리도 잡고 장수풍뎅이며 매미도 잡고 온갖 곤충과 작은 동물들을 잡아. 근데 사람들은 내게 쥐만 잡도록 하라고 했지

- 처음엔 다람쥐 사냥에 개입했어. 근데 보니까 다람쥐나 쥐나 똑같이 보리 앞에서 죽은척 연기를 하고 살려고 처절하더라고

- 그래서 이게 맞나는 생각이 드는거야. 보리나 다람쥐나 쥐나 똑같은 무게로 삶이 다가오드라고

- 그리고 보리한테서 다람쥐 빼앗은 뒤에 고양이가 우울해질수있다고해서 간식을 줬거등. 근데 그 사료들도 문젠거야. 얼마전에 기사 보니까 그게 유기동물의 사체로 만들어지거나 축산업 다른 동물들로 만든 것. 멘붕이었지. 그럼 그 사료가 되었던 다른 고양이나 개, 소나 닭은?

 

나는 보리한테 어떤 곁이 되어야하는지 진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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