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렁 이 의 길/지 구 별 여 행 자

제주걷기여행 1:무모한 모험의 시작

두치고 2020. 8. 5. 20:44
제주에 무작정 걸으러 왔다



첫 숙박지는 저렴한 샤모니 리조트. 없는게 없었고 깨끗하고 저렴해서 추천한다!


첫 숙박지에서 두번째 장소까지 목표 거리는 33키로미터

하지만 제주의 도로사정과 나의 체력 부족으로 계획은 변경되어

약 10키로는 걷는 코스로 수정,
총 약 3시간을 걷고 또 걷게 되었다.

우연히 만난 절 쉼터
사진은 낭만적일지 몰라도 실제로 걷는것은 위험천만 모험을 감수해야했던 길
도저히 걸을 수 없어 잠시 농장에 들어와 눈을 붙였다

 

제주 여행기 1편
목적지까지 8시간 13분. “고작 8시간 정도야” 허풍을 떨며 걷기 시작했다.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햇볕이 뜨겁다. 그래도 이내 바닷바람이 몸을 휘감아 기분이 좋아졌고, “아냐 난 걸을 수 있어”하며 걸었다. 걸은지 30분이 되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왜이렇게 사서 고생하는건지, 다들 렌트카 빌려서 에어컨바람쐬며 쌩쌩 달려가는데 나는 폭염주의보에 대체 무슨 배짱인 것인지 질문했다. 대부분의 여행이 그렇듯, 지도가 가르쳐준 길은 보행자도로도 없었고, 나무 한그루 없어 그늘을 찾기 어려운, 아스팔트의 쌩더위를 온몸으로 받아내야하는, 10톤 트럭이 내 옆을 쌩쌩 지나갈때마다 온몸이 오싹해지는, 그런 여행의 낭만을 싹 앗아가는 지옥 환경의 연속이었다.

대체 내인생은 왜이렇게 모험의 연속인지 모르겠다. 왜이렇게 위험천만하고 무모한 길들을 선택하며 살았고, 또 오늘도 그렇게 살고 있는지 통탄을 하다가. 그러다가. 오솔길이 나왔고, 더이상 아스팔트쌩도로를 견딜 수 없어 지도가 가르쳐 준 루트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기를 1시간, 지금 내 땀은 아마 히말라야 핑크솔트나 사해바다에서 나는 소금보다도 더 짤 것이다 장담하며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먹다 남은 버터링 두 조각을 먹은게 고작이라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 어제 분명히 돈아끼겠다고 편의점에가서 라면 사먹어야지 했다가 흥분해서 라면 두개에 아이스크림, 과자 등등 을 사고 밥한끼에 준하는 돈을 지출 한 후 남은건 한 끼당 2,000에 육박하는 칼로리였고, “내일 칼로리버닝을 하겠다”결심하고 잠들었지만 내 배꼽시계는 정확해서 어제의 칼로리와는 무관하게 힘이 쭉쭉 빠졌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이 걸어 들어와버렸기 때문이다. 더이상 걸을 힘도 없는데, 돌아갈 힘은 더더욱 없고 돌아갈 수도 없다. “어떻게하지?”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언젠가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오르는 상황 “악어와 뱀 사이에 껴있는 것 같아”. 지금의 당혹스러움과 공포가 마치 지금의 내 삶을 반추하는 메타포 같았다. 이미 늦었고, 문제해결에 도움이 1도 되지 않지만 거듭 생각해보는 것이다. “대체 어쩌다 이 길로 들어오게 된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건가” “어쩌다가 벌써 이 나이가 되어버렸나”

생각은 이내 “내가 그때 그 남자랑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내가 그때 그만뒀으면 어땠을까”와 같은 한심한 망상들로 번져갔고 오솔길이 끝나자 겨우 그 릴레이도 끝이났다. 하지만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1차선 쌩쌩 아스팔트로 이어져 겨우 1미터 남짓의 갓길을 걸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이 길을 벗어날 방법은 있다. 히치하이킹이다. 하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다. 20대 때는 무대뽀였다. 앞뒤 가리지 않고 다 덤벼들어 했다. 무서웠지만 그냥 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내가 좋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용기내는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목숨을 살릴 용기. 나를 안전하게 할 용기. 내가 처한 환경을 더 좋게 바꿔줄 수 있는 용기.

나는 더 높은 자리에 올랐고, 전국에 온갖 직업군과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줬지만 어깨는 점점 무거워졌고 나는 점점 사라져갔다. 내가 좋아했던게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 취향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다. 그냥 사회에 매우 잘 적응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보따리가 점점 야위어가는, 그런 무채색이 되어버렸다. 상담선생님은 말했다. “은지씨는 어렵고 힘든 것들을 참아 내며 은지씨의 자존감을 지켜왔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