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록 색 다 이 어 리/가 족

보고싶은 할아버지

두치고 2019. 5. 16. 00:21
보고싶은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정말 강아지를 좋아했을까?
아니면 그냥 식용으로 키웠던걸까? 생각하다가
할아버지에게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할아버지가 배웅해주던 모습
우두커니 서서 담배를 피던 모습
안녕 하면 손 흔들어주던 모습
할말 없지만 오면 반갑다고 옆 소파에 앉던 모습 모두 그립다
아침 늦게까지 자고 있으면 아침 먹어라 아이고 아침을 안먹노 하던 할아버지..
기차놓친다고 문을 자꾸 열어 깨우려던 할아버지
밤에 자다가 꼭 한번은 깨셔서 긴 소변을 보셨던 할아버지
보고싶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할아버지가 살아계셔주는 것 자체가 좋았고 위로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아빠 곁에서 큰 역할을 해주셨고 늘
아이들을 걱정하는 그런 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안계신 빈자리가 크다 할아버지가 누워있던 침대와 늘 보고 있던 tv、 밖에서 보면 깜깜한 집에 tv불이 반짝이던 3층집.
할아버지가 그립다 할아버지가 스윽스윽 바닥을 끌고다니며 내는 소리가 그립고 문을 철컹 닫는 소리가 그립다
내가 삼다를 할때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 쓴 글을.. 할아버지랑 할머니에게 읽어드릴걸... 읽어드리지 못한게 너무 후회된다.
할아버지가 써서 시꺼매진 수건
할아버지가 실수를 하고 스스로 그 뒤를 씻었던 흔적들
할아버지의 냄새
모두 그립다
할아버지 만두 좋아하는 줄 알았다면 만두국이라고 끓여드릴걸
할아버지 미안해요 많은 걸 해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첫 월급을 타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양말과 내복을 사줬던 기억이 난다. 할며니는 이모할머니의 내복에 욕심냈고 나는 할머니에게 두개의 내복을 줬다. 내게 그런 소중한 추억을 남겨주신 분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 쓸쓸해보였다
할머니가 모두 너무나 무심하다며 오열을 했던 모습...할아버지가 뼈가 아파서 끙끙 앓던 모습.. 그러면서도 치매걸린 다른 할아버지를 쳐다보거나 요양사들의 눈치를 보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머니가 책장에 고이 접어둔 수건들.. 컵받침을 접시로 썼던.. 물건들을 다루는데 서툰 할머니의 흔적들이 이 집 곳곳에 남아 있다. 할아버지가 마지막  그렇기 가신 것이 너무나 허무하고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목숨이 끊어지는 걸까.. 그리 치열하게 살아오셨는데..

그래서 그게 끝이 아니라고 믿고싶어졌다. 나는 나를 위한 것들만 생각했을때, 윤회나 다시 사는 삶이나 구원이나 또는 부활은 결국 재가 되어 이 세상 어딘가로 흩어져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사후세계가 있다면 좋겠고 그곳에서 당신들이 그리워했던 모든 이들과 만나고 외로움도 고통도 없이 깔깔 웃으며 살아계실 수 있다면 싶다. 그렇다면, 오히려 죽음을 맞이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정말 다행이라고 그리고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함박 웃음 지으며 마음껏 술을 드셔도 취하지 않으면서 취하고 어릴적 그랬던 것 처럼....
젓가락을 타닥타닥 밥상머리에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으로만.. 그리 계실 수 있기를..그리 다시 살아계실 수 있기를... 부디 간절히 바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해 신을 믿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를 찾을 공간이 없다는 것이.. 주는 당혹스러움. 다른 어떤걸로도 채워지지 않는 할아버지의 자리..
무심코 우리가 같이 살았던 그 방의 깊은 밤을 떠올리며.. 무서웠지만 그래도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도 못했구나..
할머니가 싸주던 할아버지의 도시락
할아버지가 까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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