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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수 염 고 래/난 민

탈시설논의의 관점

by 두치고 2019. 4. 1.

출처: http://m.ildaro.com/7013

#1 시설 수용 위주 정책을 해체한다는 것은, 장애인이 아닌 ‘사회’에 먼저 도전적 질문을 던지는 일이어야 한다. 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하여 ‘격리’시키는 방식이 아닌 ‘사회통합’ 정책을 편다고 할 때, 바로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는 비단 법과 제도의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현재와 미래에 대해 어떤 상상을 하고 어떤 종류의 희망을 품는가에 따라 좌우된다. 이것이 장애인 탈시설의 실질적 가능성을 논할 첫걸음이다. 

#2 기실 장애운동은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장애에 대한 사회적 처우가 장애를 만들어낸다’고 오랜 시간 주장해왔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몸’에 대한 특정한 규정이나 인식, 그리고 범주화 자체가 이미 사회정치적 문제라는 사실이 은폐되곤 한다.

#3 우리가 사는 규범의 세계 속에서 자발적이든 타의에 의해서든 누구나 특정한 능력이나 특정한 신체 조건, 그리고 특정한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추동을 당한다. 규범은 ‘평범함’이라든지 ‘평균’ 혹은 ‘보통사람’ 같은 말로 포장돼, 마치 대다수가 여기 속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실상은 모두 다 ‘다른’ 능력과 삶의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그러한 규범을 통해 서열화되고, 낙인 찍히거나 배제를 당하는 기준이 된다. 평범함(normal)은 규범(norm)이다. 장애, 성별, 외모, 피부 색깔 같은 신체의 차이부터 경제 수준, 나이, 학벌 등 우리의 일상을 촘촘히 에워싸고 있는 기준들은 거기서 벗어나 경계/주변의 대열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열등’ 혹은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동시에 내가 언제 그와 같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늘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세계에서 장애나 질병이 있는 몸, 나이 든 몸이나 의존하는 몸은 개인의 선택이나 끝없는 노력으로 제거되거나 은폐되어야 하는 것이다.

#4  마이클 샌델은 “자유”, 개인주의를 기치로 하는 세계에서 오늘날 새로운 형태의 “우생학”(eugenics. 인류를 유전적으로 개량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은 결코 거부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며, 오히려 웰빙, ‘더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개인의 의무가 되는 문화에서 강제적 성격마저 띠게 될 거라고 지적한다. 현대의 우생학은 과거처럼 국가에 의해 법으로 강제되지는 않을지언정 개개인들의 출산 관행을 포함하여 건강, 교육, 사회 복지 등 전반에 대한 인식과 관행을 전혀 새롭게 구성해낸다. 거기에 더하여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에 따라 복지, 공공성이 축소되면서 적자생존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가 개개인에게 ‘자기 구제’라는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5 우리 사회가 욕망하는 ‘규범’과 ‘평범함’, 그리고 ‘정상성’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비판이 필요하다. ‘독립적 개인’이라는 근대적 이상에 맞지 않는 몸들에게서 나오는 증언과 경험이 공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