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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렁 이 의 길/인 권 활 동 기 록 - 1 2 ~ 2 3 년

남아 있어야 할 이유

by 두치고 2015. 11. 15.



세달 만에 그를 만났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쭉 들었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자립이 불가능하기에

결국 떠나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맞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이 사실이었다.

그걸 듣고 있는데 묘한 감정이 들었다.

정말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야 한국은 그렇게 최악이지 않아 .'라는 생각도 이따금씩 튀어나왔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헤어지고 난 이후에도

자꾸만 쫓아오는 생각은 

난 도대체 뭘 했지? 였다.

나는 도대체 뭘했지.

그동안 난센에서 뭘 한거지?



왜?

이 친구가 한국을 떠나야만 하겠다고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

나는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했나? 

난 도대체 난센에서 뭘 한거야?


그런 질문들이 

우리가 함께 해왔던 시간들을 처음부터 훑어보게 하였다.

난민지위를 취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 친구와 나의 힘으로 성취한 결과가 아니었다.

다른 힘이 그 결과를 이끌었고, 

-진심으로 지위를 받아 기뻤지만-

자존감은 먼지가 되어버렸다.

그와 내가 최선을 다한 만큼 그 과정과 결과는 더더욱 큰 굴욕을 선사했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날 우리는 그 서류를 흔들며 마음으로 울었다.




그 때도 지금처럼 난센을 그만두어야 하나 생각했다.

정말 바닥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뭐라도 하기 위해서 계속 발버둥 쳐온 것 같은데

난센 속에서 조차 주어진 권한이 없을만큼 참 부족했다(부족하다).



잠이 안왔다.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나

왜이렇게 하려고 해도 안되나

이런 생각들로 활동을 이어가다보니

출근하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그만두는 것도 해결책이 못되었다.   

난센을 나가서 뭔가를 새롭게 할 만큼의 용기가 있지 않고

그럴 힘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버텨왔다.



그렇게 4년째가 되어간다.

그리고 오늘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는 도대체 난센에 들어와서 뭘 했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더라도,

너는 변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그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나?

정말 나 또한 변하고 있었던 것이 맞나? 


주어진 여건 속에서 대안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었다

그런데 내 맘대로 안되니 마비가 왔다

나가도 바꿀 수 없고

있어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마비가 되었다. 

나는 난센의 현실도 한국사회의 현실도 -아주 조금이라도- 바꾸지도 못했고

그 현실을 대하는 내 태도 마저 바꿀 수 없었다.



그래 그래서,

나는 도대체 뭘했나?

버틴 것. 그거 하나 이다.

나에게 권한이 주어질 때까지 기다려 왔다.

그리고 마비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 내 친구가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쳤다

프랑스의 테러가 내 마음을 쳤다

물대포를 맞던 농민 할아버지의 영상이 

잠들어 있던 내 마음을 일으켯다


그들은 내가 왜 난센에서 버텨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해줬다

그들은 내가 왜 난센에 더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줬다


그래 나는 아직 난센에서 할 일이 남았다

그리고 버텨왔던 시간이 힘이 되어 

다시 한 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글은 오늘 만났던 친구를 생각하며 

'내가 이렇게 이렇게 했으면 그 친구가 이곳에서 자립하며 행복하게 살았을텐데' 따위의 자책의 글이 아니다.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고,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그랬을 수도 있을테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나 나 한국의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한 역할-난민의 자립을 위한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활동-'을 하더라도 다른 나라에 가는 것 만큼이나 높은 삶의 질을 향유할 수 있는가에 대해 확답할 수가 없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에 (얼마나 살지는 모르겠지만) 남아 있는 시간 만큼은 

그녀의 아이와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시간만큼은.......






내가 이곳에서 만들어가야 할 일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난센이 허브가 되는것

이를 위해 체계를 구축하고, 연륜과 경험이 쌓여 갈 수록

활동가 개인의 경험이 쌓이는 것이 아닌

난센의 체계가 발전하는 것 -질의 성장-


난센을 매력적인 허브로 만들고 싶다

그를 위해서 천천히, 그리고 분명히 하나하나 이야기해나가고

난센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자립불가능한 한국에서 상처를 받고 다른 나라에 가게 될 내 친구를 떠올리며 드는 감정은

내가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나 하는 좌절감이 아니다.

마음 한구석이 시큼하지만 동시에 벅차오르는 감사함을 느낀다.

그는 나에게 있어 참으로 그런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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