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 외상. 침투 기억.
우선 생활에 대한 우울감이 크고, 삶에 대해 해석하는 부분이 평균치 보다는 부족한 편임.
실제로 첫번째 상담을 받고 가장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상담 선생님께 말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삶의 다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 편집되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낀 점. 그리고 설문지를 작성하며, 내가 실제로 수치가 높게 나와서, 심리상담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라는 결론이 이를 수 있도록 애쓰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 (혹시나 상담을 받지 못하면 어쩌지, 그러면 전적으로 나에게 일어나는 이 문제들이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란 말인가라는 생각들) 에서 신경이 쓰였고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당연히 문제를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니 그럴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설문지에 대해서 몇가지 추가적인 질문을 했다.
그리고 명함에 명시된 트라우마 치유센터의 목적과 내가 상담 받는 목적이 달라서, 혹여나 내가 해당되지 않는 것은 아닌가. 내가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내가 괜히 유난 떠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해당이 되고, 만약에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다른 기관을 추천해주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어서 마음 편히 이제는 다녀도 될 것 같다.
우선 계속 잔인한 일들이 올라오는 것에 대한 현상을 (지난 일주일 동안 일어난 현상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따금 그런 생각이 올라오는 것, 또는 꿈에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자연스러운 상황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라는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의 뇌 구조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부분을 보고 우리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 처럼..
그러한 생각들이 압도할 만큼 많이 나오거나, 그 생각이 남으로서 감정적으로 힘들거나 하는 것. 그러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꼭 기억해서 가지고 갈 필요는 없다고 했다. 만약 떨쳐지지 않는 것이라면, 기억하지 않으려고 해도 기억이 날 것이라고 했다.
그런 잔인한 생각들이 내 삶에 들어오는 상황이 그냥 싫었던 것 같다. 내가 그런 잔인한 상황앞에 서 있는 상상이 뭔가 나를 갉아 먹는 것 같고, 그랬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니.. 그러면 내가 이 일을 계속 한다면 계속 짊어지고 갈 부분일 것이다.
내 삶에서 그러한 삶들을 계속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냥 보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보고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보지 않고 살아간다면, 내가 행복할까?
본다면?
행복이 모든 것의 척도인가?
내 삶의 최우선의 목표가 언제부터 행복이었나?
행복이 여러가지의 감정 중 하나 인 것이라면,
예를들어 만족과 기쁨 즐거움 따위의 감정을 =행복이라고 정의내리는 것이라면
언제나 그 감정을 붙들고 있으려는 것 자체가 허상일 뿐. 인간은 그럴 수 없는 존재이지 않을까?
영원히 기쁘고 만족을 구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어떻게 의미부여하느냐에따라서 가능할 수도 있겠지.
그럼 즉 기쁘거나 즐거움 만족 따위의 감정, 생각, 욕구 들로 내 삶을 채우고 그것이 아닌 다른 감정들을 나는 지향하지 않나?
하지만 사실 결핍과 분노, 슬픔 으로부터 삶의 큰 영감을 얻고 더 깊이 삶을 느끼기도 한다.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주요한 원천이 되기도 하고 그러한 것들이 더욱 나 자신과 삶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욕구에 반영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질문에서 행복을 이야기할 수 없다.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나는 삶을 그대로 느끼고 싶은 것 같다.
되도록 그 민낯을 느끼고 싶다.
삶이란 그 속에 등장하는 존재와 시공간 그리고 나로 구성될 것이다.
그것들을 이해하고 느끼고 싶다.
더 넓고 깊고 또는 그 차원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것들을 느끼고 싶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험과 탐험의 욕구로부터
마지막 질문(볼것인가 말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전자일수도 후자일 수도 있다.
사실 그게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무엇을 볼것이냐보다 어떻게 볼 것이냐에 딸린 것일 수 있따.
하지만 무엇을 볼 것이냐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엇을 볼 수 있는 환경에 날 두느냐에 따라서 내가 보는 세상의 영역은 많이 아주 많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어쩌면 내가 속한 사회에서는 가장 먼 곳. -물리적으로든 또는 그렇지 않든-의 이야기들에 닿아 있다.
또 가장 가깝지만 가장 그 깊고 깊은 세상의 구석의 이야기 - 그 구석이라고 함은 많은 인간들이 만든 중심으로 부터 벗어난- 이기도 하다. 중심의 이야기에는 잘 닿을 수 있다. 권력이있는 자라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삶의 경험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내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으로 뛰쳐 들어왔다.
그렇게 의미부여 했다.
그럼 1. 나는 내 분노를 해결했나?
2. 이 활동이 내 분노를 해결하는데 정말 도움이 되나?
3. 지금 현재도 이 활동이 분노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난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삶에서 단 한번도 그런 상황이 없었기 때문에 공감하기 힘든 때가 있다.
그래서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해 그러한 상황들을 거듭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고, 내가 그 사람이라면.. 이라고 생각해 버릇 했다.
그리고 그 상황에 있었던 사람을 진정 감정적으로든 이해하고 싶었고
내가 그냥 헛소리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상황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정말로 내가 그렇게 생각한 적이 많았나?
나는 약간 상상한 것들이 실제라고 믿는 것인가?
여튼 그런 상담 방법에 대해서 그것을 좀 줄이고 다른 방식으로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것들을 선생님께 이야기하니
선생님은 우선 그런 방법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그보다 난민분들을 상담하며 올라오는 감정들과 그와 연결되어 오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해라고 했다.
그런 것들이 없을 경우에는 만들지 말아야겠다.
하지만 있는지 한번 살펴보아야 겠다.
그런데 만약에 그게 아니다고 싶을 경우에는 그냥 그것을 억지로 연결시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도록 하자. 내가 돈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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