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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록 색 다 이 어 리/치 타 공 정 착 기 - 0 8 년

05.10.2008.pm9:14

by 두치고 2012. 5. 6.

05.10.2008.pm9:14

 

 

 

 

 

存在の耐えがたきサルサ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응 그렇다. 참을 수 없는. 용납할 수 없는.

처음으로 스타킹을 신었던 14살 무렵

미처 발 밑이 어두웠었고, 큰 돌부리에 걸려 (우스움을 지나쳐) 안쓰럽게 넘어졌던 기억이 난다.

스타킹은 물론이고 다리가 메롱메롱이 되었었지.

그러나 그 돌부리와 찢어진 스타킹 보다도 무섭고 싫은 기억이 있다. ㅡ그것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수 없이 겪어왔던ㅡ 넘어질 뻔한 찰나의 등골의 서늘함. 즉 넘어질 했던 기억들.

 

 

'설마'라는 단어가 눈 앞에 아롱거리더니

시간과 섞여 눈물이 되었다. 그리고 ㅡ지난 날 넘어질 뻔 했던 것들 처럼ㅡ등골이 서늘해 진다.

쪽지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생각할 수 조차 없다. 아니 나는 그 쪽지를 영원히 모를 것 이다.

화가 났다. 올림푸스카메라를 팔고 받은 돈 5500TK가 들어있는 봉투가 며칠 째 보이지 않을 때에도 이렇게 초조 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딘가 즈음에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ㅡ이런식으로 전번 똑딱이를 잃어 버렸지만ㅡ

5500TK 봉투와 달리 쪽지는 나에게 말한다. 너의 기억 따위는 까마귀 등을 타고 심연의 북서쪽으로 날아가버린지 오래다.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참을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걸 되 돌릴 수는 더더욱 없다.

 

 

어제 맨소래담을 어깨에 발랐다. 천장에서 돌아가는 팬 때문인지 어깨가 벌집 쑤신 듯이 아팠다. 피부껍질이 이대로 있다가는 다 벗겨 질 것 같은 쓰라림이 어깨위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나는 웃기는 포즈로 앉아 ㅡ일어설 수 조차 없었다ㅡ 연신 ' 아야 아야 '를 외치며 고통에 대한 생각을 했다.

고통이란 삶이구나.

내가 수치스럽고 참을 수 없이 화가나는 실수로 메모를 잃어버린 것도, 그것으로 인해 '歸' 할 수 없는 것도 삶 이구나

-그렇다고 고통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나는 큰 인물이 아니다.

고통을 생각하면 화가 나고 눈물이 나고 우울해 진다. 

 

 

 

내가 기억하는 이모 할아버지는 호탕하고 크고 진실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의ㅡ7살,8살ㅡ난 어른과의 관계가 부족했었을 텐데, 지금생각해보면 그는 어린이와 조화하는 분이셨고 나는 꽤나 이모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진실의 관념을 한참 늘어놓고 있던 중 최진실의 소멸과 이모할아버지의 소식은 날 영혼의 세계로 끌어드렸다. 나는 어디부터 시작된 매듭인지, 어디서 부터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점점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이모할아버지를

그리고 나와 전혀 관계없는 한 연예인을 잊을 것이다.

 

별을 보았던 밤 수정언니가 한 말이 귓가에 생생하다. 그래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살아있다는 소식을 마제마제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과 핸드폰이 있다는 것 뿐이다. 그것을 차라 한다면 우리는 한국에서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 나는 한국에서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 이따금 창틀에 살짝 앉았다 날아가버리는 파리와 같은 그들의 기억속에 있을 뿐이다. 나는 한국에서 죽었다. 한국에서 나는 죽었다.

 

 

 

 

 

 

기억이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일 지도 모른다.

 

 

 

벽에 붙이는 간이 옷걸이가 자꾸만 떨어진다. 얼마전 Fix-it에서 산 양면 테이프를 꼼꼼히 옷걸이 뒷면에 붙이며 믿음에 대한 생각을 한다. '내가 너를 벽에 붙이는 순간 너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믿음을 양면테이프와 함께 옷걸이 뒷면에 붙여 넣는다. 벽에 너를 붙이는 순간에도 '네가 떨어지지 않을 것' 이라는 믿음을 불어 넣는다. 이틀이 지나 믿음과 함께 붙였던 간이 옷걸이가 떨어진다.

 

 

나는 믿음에 대하여 생각한다.

믿음의 종류에 대하여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종류의 믿음을 경험한다.

사랑과 신념

또는 종교에 대하여 생각한다.

나는 어리석은 존재이기에 세상의 모든 신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날 때부터, 아니 자궁속에서 부터 하나의 절대적 신만을 찬양하도록 운명 지어진 수많은 태아들을 생각해본다. 그들의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부터 오는 것인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수억의 신들 중 하나의 신만을 세상의 빛과 같은 절대적 존재로 인식하여 나 따윈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깊고 깊은 믿음의 뿌리가 내려진 것일까. 절대가 상대로 변화하는 시점에서 그 뿌리는 어떠한 모양을 가지게 될 것인가. 아니 애초부터 그 뿌리는 어떤 모양을 가지고 있을까. 믿음. 종교를 가지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문득 부러운 마음이 찾아온다.

 

 

 

나는 이와 같은 글을 쓰며 '나는'이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쓰고 있다. 나는 정말 나 밖에 모르나 보다.

진심으로 내가 다른 이들을 생각하고 섬기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나를 위한 바램이다.

 

 

 

 

 

 

06.10.2008~11.10.2008

뿌런다카를 꼭 만나고 올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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