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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분 에 물 주 기

the gray

by 두치고 2015. 12. 3.

더 그레이를 보고 처음에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 부끄러움 조차 타인에게 '이야기'할 가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로지 나의 이해를 위한 글. 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나의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글을 쓰자. 


눈 보라를 뚫고 걸어가는 이들. 이들 속에서는 이 과정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도, 끝까지 두려움과 맞서는 자도 있다. 나였다면 그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스스로 삶을 포기했던 자. 포기한 이후에도 죽기 직전까지 살아 있는 과정에서는,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의 삶을 포기했다. 진짜 마음은 죽음의 두려움에 짓눌린 것이었을까. 아니면 진정 죽고자 했던 것일까. 스스로의 삶을 포기한 이후에 되내이던, '나는 두렵지 않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악착같이 살아남아도 결국 돌아오는 삶은 지옥같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이라면, 그 창백한 얼굴에 내 마음을 입힌다. 주인공도 갈등했다. 짧은순간에 흔들리던 그의 눈동자. 그가 다시 걸음을 재촉할 수 있었던 것은 목구멍 밑으로 차오르는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발현된 삶의 의지였을까? 아니면 죽음의 두려움이었을까? 




그런 동기가 어찌되었든 그는 마지막에 삶과 맞선다. 수없이 되내였던 '두려워하지 말라' 그 말. 사랑하는 이의 그 한 마디를 떠올린채. 그리고 아버지가 남겼던 시. 


한번 더 싸워보세

once more into the fray...

마지막으로 폼나게 싸워보세

Into the last good fight I'll ever know.

바로 오늘 살고 또 죽으세

Live and die on this day...

바로 오늘 살고 또 죽으세

Live and die on this day...


를 읊으며


그 두려움과 똑바로. 정면으로 마주 본다. 

결말은 모른다.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금만 더 걸어가면 저 강 끝에는 오두막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결말이 나지 않은채로 끝난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렇게 두려움을 넘어 다시 일어섰으리라고 생각했다. 막연히. 그 뒤에 살아나지 못했더라도, 

삶과 정면으로 마주 본 그의 눈동자 속에서 짧지만 강렬하게 나를 투영해 보았다. 그 두려움을 마주보는 눈동자를 동경하였다.



그 여정의 위기들 속에서 주인공을 다시 일으켜세웠던 말. 두려워하지말라. 그 반복되는 메세지들 속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나 생각해본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어릴 때 부터 언제나 죽음은 내 곁에 있었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와 곁에 있었기에 그리고 지금도 그렇기에 죽음은 나에게 친근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쩌면 나는 가장 죽음을 두려워하고 마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죽음을 친구로 둬야 했을 만큼, 죽음을 생각하고 연습하며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죽음을 달랬던 것 같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죽음을 제대로 마주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삶이 당연할 것이라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두렵지 않은 것이다. 난 참 나에게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구작가의 삶을 보며, 살아가는 두려움보다 살아가는 감사함을 하루하루 채워가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거늘. 이제 왠만한것은 자극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당장 북한이 미사일을 쏜다고 해도 나는 방바닥에 누워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어쩌면 지금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얼마전에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지만. 나는 내가 혼자가 되는 것이 가장 두려운 것 같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고 혼자됨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 하지만 엄마가 떠올랐다. 나는 내가 스스로를 혼자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주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두려움을 마주보든, 마주보지 않든 두려움은 우리 곁에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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