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이후 몇몇 병원을 다니며 마음 고생을 한 끝에 마지막으로 정착한 병원, 우리네 한의원
역시나 소문처럼 많은 이들이 찾는 병원이기에 대기 시간이 어마어마하다.
나는 무려 한달 째 이곳을 꼬박꼬박 나가고 있는데도, 대기 시간이 평균 2시간.
어쩌다가 정말 기적처럼 1시간 내에 치료가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그동안 딱 2번 정도 밖에 없었다.
의자가 불편해서 기다리다보면 허리가 쑤시고,,,
나보다 한시간이나 늦게 온 사람들이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먼저 진료를 받는 걸 보면 화가 나기도 하면서도
의사선생님 얼굴을 보면 사실 잊혀지는 것 같다.
아무리 돈을 받고 일하는 거라고 하지만,
이 일은 보통 사명으로는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알게 된다.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는 환자들.. 그리고 빈번히 놓치게 되는 식사시간...
그래도 항상 월요일이면, 주말 잘보냈냐고 물어봐주시고
교정 치료를 해주신다.
며칠 전 식사하셨냐고 용기내어서 물어봤더니 보통 9시가 넘어야 저녁을 먹는단다.
기가 찼다. 좀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무리 의료사회협동조합이고 좋은 취지의 병원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나. 가장 중요한 의사가 밥때도 못지켜가며 일을 해야하는 이유는 뭔지.. 초코바라도 하나 갈때마다 챙겨가야 하나(챙겨가야겠다) 싶었다.
물론 깜빡하고 안챙겨갔지만..
그래서 오늘 치료를 받으며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에 물어봤다.
나: 오늘은 밥 드셨어요?
의사: 아니요 못먹는다고 보시면 되요
나: 아무리 그래도 밥먹는 시간은 지켜줘야 하는것 아닌가요?
의사: 대기자들이 많고 하다보면 어쩔 수 없어요.
나: 힘들지 않으세요?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밥이라도 먹을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너무 한것 같아요
의사: 아무생각 없이 해야해요. 그냥 이 과정을 즐기는거죠. 이 과정을 즐기지 못하면 할 수 없어요. 이 과정이 즐겁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겠죠.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도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일을 해라고 이야기해요. 저는 이 일을 중학생때 부터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환자들을 보는게 즐거워요.
나: 네 감사합니다.
사실 뻔한 이야긴데, 오늘은 뻔한 이야기 처럼 들리지 않았다. 내가 한 달동안 이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아왔고, 짧게나마 그의 삶을 보아왔기 때문에 정말 쉽지 않다는것을 안다. 분명 종교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신념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신념이 없다면 정말 하고싶은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즐거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항상 즐거울 수가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나의 경우를 되돌아 보았을때, 적어도 나란 사람은 그랬다. 그게 나만 그런걸까? 아니면 저 의사도 나와 다를바 없는데, 나와 다른 것은 그보다 더 깊은 자신에 대한 이해 또는 종교와 같은 믿음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대단한 사람이고 정말 대단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내 일을 더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더 즐거운 일을 찾는게 좋을까? 아마 저 의사는 자신이 하고자 했던일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고 치료라고 하는것은 그 성과가 바로바로 보이고 또 그게 사람과 관련된 것이기에 그만큼 즐거움과 보람이 따르기 쉬운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나또한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과 그 시도가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 일의 마력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저렇게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오래 못버티는 것은아닐까? 저렇게 좋은 사람이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진료 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이 의사의 진짜 마음을 잘 모르겠다. 더 이야기하고 싶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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