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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분 에 물 주 기

나라야마 부시코

by 두치고 2012. 5. 13.


   마을 사람들은 노래 부르곤 했다. “33개의 이빨을 가진 어머니의 이빨은 도깨비 이빨“. 마을에서 70살 까지 사는 노인은 귀신, 도깨비에 비유되며 놀림감이 된다. 어린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아직도 건강한 할머니는 마을의 우스갯거리다. 이 마을은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당연시되어지고 있다. 나라야마에 부모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고, 겨울에 태어난 아들은 쓸모가 없다.

 그들은 나이가 들고 70즈음이 되면 나라야마에 가야 한다. 그들에게 죽음은 숙명이 아닌 의무이다. 할머니는 오래 사는 자신이 염치가 없다. 이빨을 스스로 깨고서는 두 개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혼잣말을 하곤 한다. 심지어 새로 온 건강하고 싹싹한 며느리는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뺏어 간다. 손녀를 돌보거나, 장작을 나르거나 하는 일을 며느리는 거뜬히 잘 해낸다.

  죽었다가도 흰쌀밥만 먹으면 살아나는 이 마을은 지독히 가난하다. 온 마을 남자들이 총 동원되어 토끼 한 마리를 겨우 잡아도 독수리가 ‘휙’ 채어가는 현실은 호락호락 하지 않다. 그러나 뱀도, 사마귀도, 쥐도, 너구리도, 인간도 자연의 섭리를 벗어날 수 없다. 먹어야 하고 섹스를 해야 하며 출산을 하고 죽음을 맞는다.

  비밀의 계곡에서 고기도 척척 잘 잡을 수도 있는 할머니지만, 눈이 허리까지 쌓이는 겨울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은 또 언젠가 태어날 것이고 먹을 것은 한정되어 있다. 결국 할머니는 나라야마행을 결심한다. 아들의 짐이 되어 어머니는 나라야마를 향해 간다.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서 한숨을 돌릴 때 홀연 듯 어머니가 사라진다. 그것은 종달새를 날려 보내듯 아들에게 홀가분한 일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라야마로 가는 길에는 지켜야할 규칙이 많다. 그 중 마지막 규칙은 계곡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그 계곡을 넘어 나라야마 길을 들어서게 된다. 신이 보일 것이라는 나라야마길에는 수북이 쌓인 앙상한 해골과 그 위를 날아다니는 까마귀가 있을 뿐이다. 신성시 되던 마을의 이야기는 바닥을 보이고 현실로 다가왔다. 부모를 버려야 하는 아들에게는 충격적인 곳이다.

  노인이라고 죽고 싶겠는가. 70대의 노인 또한 죽고 싶지 않다. 아들의 바짓가랑이를 전력을 다해 붙잡고, 그저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나라야마에서는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듯 노인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진다. 자신이 낳은 자식의 손에서 철저히 버려진다.



감자를 도둑질 했다가 죽음으로 이르렀던 가족, 가난은 인간을 분노케 한다.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아이와 노인, 가난은 인간을 잔인하게 한다.
나라야마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어머니, 가난은 인간을 쓸쓸하게 한다.
눈이 오는 날에 나라야마에 간 어머니는 운이 좋은 것, 가난은 인간이 살아 있음을 고통스럽게 한다.


 

  이 시대의 나라야마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나는 조상의 살과 피를 밟고 의학과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는 반면,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각각의 나라야마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나라야마 보다 더 지독하고 잔인한 절대사회구조 아래에서 그들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잔인한 이유는 자연의 섭리가 되어 버린 듯한 특정 지배층의 가난의 악용이라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나라야마 사람들은 운이 좋다. 그들은 그들의 땅을 영위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으니까. 헨리조지가 말했듯, 자연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향유 하라고 베풀어준 땅을 배타적인 일부가 소유하는 인간의 부정의 때문에 이시대의 가난은 깊은 수렁에 빠졌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나라야마와는 전혀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언젠가 나라야마에 간다. 불의하게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고, 병이 들 수도 있고, 혹은 지고 있는 짐이 무거워서 내려놓기 위해 나라야마에 간다. 인간은 너무 다양하다. 그래서 불평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라야마의 관습이 없는 이 시대에 다른 사람들 억지로 나라야마에 끌고 갈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정녕 이 시대의 나라야마 부시코는 해결할 수 없는 섭리인 것일까?

  나라야마에 가기 전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뿌렸던 씨가 생각이 난다. 나는 희망을 믿고 싶다.

 이 시대의 지독한 나라야마를 부시코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은 가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으로 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가난을 더욱 공부하고 싶고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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