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록 색 다 이 어 리/몸 기 록

내 몸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나

두치고 2022. 1. 2. 21:04

내 몸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나



2016년 경이었다
단체의 설립자이자 독재자 같았던 이가 그동안 권한 하나 안주고 운영위 하나 참석 못하게 하며 내가 아직은 어리고 경험없으니 멀엇다며 능력을 폄하하던 그 인간이 사무국장 후임을 찾다가 실패하고선 자기는 도저히 이거 못해먹겟다며 거의 내게 단체를 버리고 갔을때 고작 경력 3년인 내가 이 단체를 도저히 어떻게 이끌고 가야하는지 막막했을때
그 즈음에 나는 고질적인 질염과 방광염을 앓기 시작했다
12개월 중 10개월 가량을 자궁이 염증 질환을 앓았고
여성의학과는 내게 각종 hpv검사 바이러스 검사 암 검사를 종용했고
나는 그 검사들에 응했지만 결국 항생제를 2년 가까이 먹게 됐다

항생제는 서서히 내 몸의 면역을 다 망가뜨렸고
내 몸은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공황 장애가 오고 한약을 먹으며 정제된 탄수화물을 제외한 채식을 시작했고
10kg을 감량하며 몸이 나아지는줄 알았다.
그러나 항생제의 여파가 컸을까 이미 염증에 약해져버린 자궁에 문제가 생겨 나팔관을 자르는 응급수술을 했고
그로부터 2년 뒤
유달리 덥고 힘들었던 2018년 과로와 불면증 일상적인 불안증에 시달리던 나는 언제부턴가 회복할 수 없는 통증이 내 삶을 짓누르고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만 살아왔는데 그해 오래된 내 집은 너무 더웠고
온 몸에 땀을 흘리며 배가 아팠다

나는 항생제를 다시는 먹지 않겠다 다짐한 후로 한동안 병원에 가질 않았는데
이번에는 몸이 너무 안좋아 병원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았다

자궁내막증이라는 병에 대해 온갖 정보를 찾아봐도
인터넷에서 에이포용지 한장 정도의 분량 이상의 내용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내막증은 연구되지 않은 밝혀지지 않은 여성의 질환이었고
아무튼 나는 병원의 제안으로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다.

그 후로 나는 숨이 더 잘 쉬어지지 않았고 심장에 부정맥이 생겼고
그걸 6개월을 버텼다. 하지만 밥을 먹을때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기에 의사에게 말해보았더니
호르몬 치료의 부작용일 수 있다고 했다.

그후로 호르몬 치료도 중단하게 되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바디버든 밖에 없다는걸 알았고
집에 있는 모든 플라스틱을 버렸다. 배달도 가급적 시키지 않았다.
그러면서 조금 몸이 회복되는가 했는데, 결국 활동에 복귀하니 그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배달을 점점 시켜먹게 돼며 바디버든이 무너졌다.

가려움은 나팔관 절제 수술 이후에 함께 생긴 질환이다. 유독 잠을 잘 못자거나 추운 곳에서 오래 있던 날은 밤새도록 가려웠고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그럼 가려움이 더 심해졌다. 시중의 모든 바르는 약들이 듣지 않았는데 마지막 치트키 가장 독한 연고를 처방 받고나서 조금 가려움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려움은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았고, 연고에 내성이 생기는 것 같았다.
피부가 가려울때마다 죽고 싶고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하나 싶고
나는 병에 걸릴 수 밖에 없는 모난 사람이라 그런걸까 생각하곤 한다.

경동맥이 점점 아파오고 약도 먹질 않은지는 1년 정도 됐다. 21살 때 방글라데시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다 스트레스성 두통이 처음 왔다. 그 이후부터 스트레스를 내가 견딜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과도하게 받으면 얼굴이 터질 것 같이 붉어졌고 뒷목이 당겼다.
29살떄 파란불에 건너다 2명이 탄 오토바이가 나를 쳤고 그 뒤에 온갖 병원을 다니며 치료되지 않는 몸을 삶을 끌고 살아내야했다
그때 야매로 습부황을 하던 인간이 내게 자기가 수천명을 부황을 떠줬는데 나는 심각한 상태라며 겁박을 줬고 나는 그 말을 개무시했다. 그때부터 6년을 더 그대로 살았더니
내 혈관이 80세 노인보다도 안좋은 상태고 이대로 살다간 40살 전에 죽는다고 했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때 할아버지와 동생을 위해 설겆이를 하며 억울하다고 생각했고
중학교, 고등학교때 그 이후에도 항상 40살 전에 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오 신이 드디어 다른 내 소원보다 그 소원만큼은 이뤄주려고 하는가 했다.

그런데 경동맥이 왜 이렇게 점점 굳어지는지, 혈관이 아파져오는지 모르겠다. 혈관에 좋다는 약을 목구멍이 터질만큼 수백알 쑤셔넣어도
목 마사지를 해도
반신욕을해도
좋다는 약초를 먹어도  아무튼 다 말을 듣지 않네



최근 몇년간 아픈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내 동료이기도 가족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이기도 했다
내 아픔을 꾀병이라고 조롱하던 이도 만났고, 웃어 넘기는 사람도 만났다. 가족들에게 너는 왜 항상 그모양이냐 라는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들을 겪어보니, 마음껏 아프기도 힘든거구나 라는걸 알았다.
내가 내 주변에 짐만 된다는 그 자괴감. 내 아픔과 고통을 오롯이 이해받지 못하는 서러움 보다
너무 몸이 아픈데 아프다고 말할 곳이 없는 서러움
내 아픔을 전시해야 병원비를 구할 수 있었던 모든 과정들
이제 다 나을 것 같은데도 낫지 않는 내 몸뚱이가 삶이 매일 밤이 아프고 무거웠다
그래서 나는
실은 나는
진짜 나는 10년 뒤는 커녕 그 어떤 미래도 상상되지 않고 계획할 수 없다.

지금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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