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분 에 물 주 기

osho-사랑이란 무엇인가

두치고 2020. 2. 1. 11:12

진정한 사랑은 요구할 줄 모르며, 온전히 주는 기쁨만 따른다. 사랑은 결코 은혜를 베푸는 일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누군가 그대의 사랑을 받아주면 그대가 은혜를 받는 것이다. 사랑은 받아준 이에 대한 감사이다. 사랑은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감사도 바라지 않는다. 상대방이 감사의 뜻을 표하면 사랑은 늘 놀라워한다. 즐거운 놀라움이다.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에 좌절은 없다.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인을 통해 사랑을 섬겨라. 그러면 연인에게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연인에게 집착하지 않을 때, 사랑은 가장 높은 정점에 이른다. 진실하지 않은 사랑은 너무 지나치게 걱정한다. 늘 관심이 끊이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걱정이 아니라, 사려깊은 마음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정말로 필요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숙고해야 한다. 그의 어리석은 환상에 불필요한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된다. 그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모든 것을 줘야 하지만, 그 사람의 환상이 만들어낸 욕망을 충족시켜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간절히 원한다고 해도 그의 에고를 채워줘서는 안된다. 그 사람에게 해를 입히게 될 어떤 것도 줘서는 안된다. 그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일인지, 아니면 그의 에고가 원하는 일인지 구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려 깊은 마음이다. 사랑은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기 보다는 함께 느끼는 것이다. 사랑은 무엇이 필요하든지 그것을 배려한다. 지나친 간섭을 하지 않는다. 가짜 욕망을 채워주지 않는다. 독이 되는 관념을 실현하게 해 주지 않는다. 사랑을 명상하고, 사랑을 추구하고, 사랑을 실험하라. 사랑은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실험이다. 사랑의 에너지를 실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사랑하면, 아니 사랑하려고 노력하면 에고가 생겨난다. 사회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에고를 갖고 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자신을 가장 우월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사랑은 의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의무는 짐이자 형식이다. 사랑은 형식이 필요 없다. 사랑은 기쁨이며 나눔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충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언제나 더 많이 주려고 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존경한다. '내가 나이듯, 다른 사람도 그인 것을. 내가 사랑과 존경과 자비를 즐기듯, 남들도 그러한 것을'

 

사랑은 우리에게 영원을 처음으로 맛보게 한다. 사랑은 무한한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방법이다. 사랑은 순간이지만 영원을 뛰어넘는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총체적으로 사랑하라. 자기 비난과 비하를 완전히 떨쳐버리는 날, 원죄라는 개념을 버리고 자신의 존재가 귀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따는 것을 알게 되는 날, 크나큰 축복에 놀라게 되리라. 

어느 누가 추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겠는가? 누군들 추한 존재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겠는가? 진흙탕이나 어둠으로 깊이 들어가고자 할 사람이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지옥이라 생각하는데 그 속으로 들어갈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을 꽃으로 살짝 가려놓고 자기자신으로부터 도망갈 궁리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동료를 찾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늘 타인을 원한다. 

 

1. 자신을 사랑하라 >2. 자신을 주시하라

억압하지말라

 

 

p38 우리는 왜 어떤 것에 매달리는가(집착하는가?) 그것을 잃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집착은 상대가 절대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이다. 사랑은 집착을 알지 못한다. 사랑이 가진 미덕은 잃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명예이고, 존경 그 자체이다. 아무도 그것을 뒤엎을 수는 없다. 사랑하는 상대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상대는 변하지만 사랑은 흐르는 강물처럼 그대로 있다. 사랑은 몇 사람만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별과 태양, 꽃과 새, 그리고 모든 존재를 불러 모아 향연을 베푼다. 

 

p48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미워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은 파괴적으로 변한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 모두를 미워한다. 그는 늘 화가 나 있고, 폭력적이며 분노 속에 살아간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는 자아 즉 에고를 찾아볼 수 없다. 사랑은 언제나 에고를 녹여버린다. 자기자신을 사랑하면 놀랍게도 자아가 사라진다. 자기애는 완전히 자아가 사라진 상태이다. 나르시즘의 반대를 위해서는 자기 사랑이 필요하다. 

p50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의식을 가지고 보라. 그것은 단지 나르시시즘일 수 있다. 상대방의 얼굴, 눈, 상대방이 하는 말을 그저 자신의 그림자를 비추어 보는 거울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백에 아흔아홉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도취였다. 사람들은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대방이 보여주는 존중, 관심, 아첨을 사랑한다. 

 

자기 몸과 존재를 즐기고, 소중히 여기고, 축하하라. 그러면 에고나 자만심의 문제는 사라진다. 

 

p55 사랑속에서 겪는 고통은 절대 헛되지 않다. 사랑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도취적이며 세상에 대해 닫혀있다. 그는 오직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 

p62 인도인들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바로 그것이 되는 길 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랑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방법 밖에 없다. >진정으로 자신을 알 수 있는방법/내가누구인가에 대한 탐색/존재하고자 하는 인도인의 열정: '너 자신으로 존재하라' 

 

 우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라. 우선 자신을 알라. 그러면 사랑은 보상으로 주어질 것이다. 사랑은 꽃잎처럼 그대 위에 쏟아져 내릴 것이고 그대의 존재를 채우리라.

P103 사랑은 의심하지않으며 사랑은 질투하지않는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고 강요하지않으며 자유를 준다. 자유는 함께 있어도 그 사이에 공간을 둔다.

P113 사랑은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사랑은 오직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사랑은 자기 안에 있는 모든 혼란 혼돈을 의식하도록 만들어 준다.

P124 상처받는 것은 에고이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경쟁하는 것도 에고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야심을 갖는 것도 에고이며,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도 에고이다. 질투와 소유욕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고 에고이다. 에고는 소유해야 존재할 수 있다. 소유했던 것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가진게 없으면 내면에서 에고를 찾을 수 없다. 나라고 말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P242 그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안정감을 얻기 위해 무엇에든지 자꾸 매달리는 것이다. 그대는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무엇이든 그대의 뿌리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대가 자기 자신에게 뿌리를 내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그대안에 바로 이것이 있고 그대 안에 바로 이 의식이 있을 때, 그대는 누구에게도 매달리지 않는다.

P253 초연함과 무관심의 차이. 기쁨이 판단 기준이다. 기쁨 속에서 성숙해간다면 그것은 제대로 가는 것. 무관심에는 기쁨이 없다.

그대가 행복하다면 그냥 앞으로 나아가라. 행복하고 중심이 잡혀있고 이전보다 더 활기 있다면 그냥 계속 나아가라. 그러면 두렵지 않다. 행복을 시금석으로 판단하라. 다른 무엇도 기준이 될 수 없다.

P295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를 버리지 않는 한 그대는 홀로 있을 수 없다. 자기 자신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 누군가 자신에게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기를 원치 않는 사람. 그 사람의 의미는 자기 내면에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의미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지 않는다. 그는 의미를 구걸하지도 않고 의미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 사람의 의미는 자기 존재에서 나온다.

P300 오직 아무도 아닌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간다. 자신의 무의미함을 발견한 사람, 자기 배를 텅 비워버린 사람, 에고의 욕구가 헛되고 미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 그것이 헛될 뿐만 아니라 해롭다는 것을 통찰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 에고의 욕구는 그대를 미치게 한다. 결코 그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홀로있는자는 다른 사람에게서 그들의 눈빛과 반응으로부터 의미를 구걸하지 않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