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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렁 이 의 길/지 구 별 여 행 자

오체투지를 관통한 짧은 글

by 두치고 2015. 12. 3.

지하철에서 내 집에서도 많은 괴리감이 들었던 것은 티벳 사람들의 삶이 내 안에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 묻는다면, 예쁜 옷을 입으며 살고 싶다는 이야기도 나오겠지만

그 남루한 행색의 완벽한 미소를 잊지 않고 싶다고 이야기 하고도 싶다. 

어떻게 살 것인지는 알았다. 살아있단 것을 느끼면서 살고 싶다.는 것.


그 미소가 나에게 말해준 것은 무엇일까. 왜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오랫동안 그 미소를 잊지 못하고 잊지 않고 싶을 만큼 소중한 경험으로 내 곁에 두고자 하는 것일까. 그게 가장 중요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삶을 나도 살고 싶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 미소를 만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숨이 멎을 만큼 완벽했던. 그리고 온 몸의 세포를 사용하여 기억하고 싶던 그 미소를 나도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저런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은 어떤 내면을. 어떤 우주를 경험한 것인지. 알고 싶었다. 


김대리 처럼 생긴 청년이 오체투지로 너덜너덜해진 넝마를 걸친채 절을 이어가고 있다. 왼쪽으로 방향을 옮겨가며, 그 몸은 12세 부처 상을 향하며. 그 움직임과 표정이 필사적이었다. 한 순간, 한 순간을 최선을 다해 절을 하고 있었다. 


긴 세월 길러온 머리를 보라색의 천으로 땋고 예쁜 천으로 옷을 해 입은 할머니의 뒷모습이 귀여웠다. 예뻐보였다. 절 한번을 할 때마다 몸이 불편해보이는 할머니들이 많았다. 그런데 계속 절을 하고 있다.

자신을 내려놓기 위해. 억압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그 처절한 움직임들에 눈물이 났다. 그 처절한 삶이 가슴 속에 훅 들어왔다. 



오체투지는 중생이 빠지기 쉬운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예법이다. 밀교 계통에서는 스스로 고통을 겪으면서 수행하는 방법으로 행하여져 엎드려 온몸을 완전히 땅에 붙이는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오체투지를 하기 어려울 때는 반배를 한다. 부처 앞에 헌화하거나 향·초·공양을 올릴 때에도 반배를 하는데, 합장 자세에서 공손히 머리를 숙이면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체투지 [五體投地] (두산백과)

 

고행이 아닌 공을 찾는 삶의 구도, 나를 찾는 삶.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몸을 땋에 닿게 함으로써 몸과 땅을 하나로.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예법. 


행복을 위해 살지말고 보람을 위해 살라